그 따스했던 등
(아버지 손은 약손)
13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는,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방에서 나를 몰래 업어주셨다.
그럴 때마다 아래채에 사는 머슴의 아들이 물 길러가다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며 놀리곤 했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본래 양반으로 벼슬길에 오르려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 한다.
구학문을 하셨는데 친일은 안 한다고 신학문을 배울 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딸들에게는 일본 말을 못 하게 했다.
심지 굳은 파평 윤 씨 양반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마을에서, 한문 글 쓸 일이 있거나 장례식 등 대소사 때마다
누구를 막론하고 성심껏 돌보셨다.
거기에 나의 태몽을 꾸신 후부터 농사일까지도 열심히 배워 부지런히 가족을 부양하신
착하고 성실한 분이셨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늘 아버지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말을 듣는 것이 참 좋았다.
아버지는 인상도 부드럽고 인물도 참 좋으셨다♡
(아버지가 알려주신 하나님)
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하늘의 도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종교심이 생겼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것도 그때 아버지께서 알려주셨다
나도 벼를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로 그렇구나" 하고 깨달아졌다.
(책을 읽어주신 아버지)
아버지는 자주 나와 나란히 누워
나에게 당신의 팔을 베게 하고는, 춘향전, 심청전 그리고 효자 할아버지 이야기 등을 읽어주셨다.
효자 할아버지는 파평 윤 씨 중 나의 직계 선조분이다. (나는 11대 후손)
극진한 효심으로 소문나 나라에서 효자문을 내리신 분이다.
아버지가 책을 읽어주시던 그 구수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꽃을 좋아하는 꼬마 아이)
어머니는 담장을 따라 늘 꽃을 심고 가꾸셨다.
어머니는 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그 꽃들을 참 사랑하는 아이였다고 하셨다.
눈만 뜨면 마당에 나와 꽃을 보며 쪼그리고 앉아 있었단다.
조금 커서는 직접 꽃을 가꾸고, 돔부콩 등도 길러 어머니께 따다 드리기도 했다.
(자연이 주는 지혜, 아버지의 지혜)
내가 기억하기에
나는 나무며 곡식이며 열매, 그리고 하늘과 바다 등 자연과 친구가 되어 대화 나누는 걸 좋아했다.
때론 아버지께 어른이 되어야 알 수 있는 지혜의 말씀도 듣곤 했는데, 나는 나름대로 내 생각을 아버지께 자유롭게 말하기도 한 것 같다.
내 아버지는 늘 내 말을 재밌게 듣고 다정하게 대답해 주셨다.
(물 장수 아버지)
아버지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길으셨다
어머니는 최 씨네 부잣집 딸로 몸종과 많은 혼수를 가지고 시집오셨다.
그런데 큰아버지의 명령으로 그 모든 걸 몸종과 함께 돌려보내고 말았다. 시집온 지 3년 만에.
그 후, 아버지는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에, 아침마다 그날 필요한 물을 큰 독에 가득 길어 채워두셨다.
#1931년생 윤옥기 자서전 no1 https://brunch.co.kr/@ma-fe/46
※이 글은 어머니의 기억을 기반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