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한 농사일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체험했던 일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농사일 에피소드 1) 6살
촉새나 참새가 아직 다 익지 않은 벼 이삭을 못 먹도록 쫓아내는 새보기를 해보았다.
여섯 살 때, 혼자 아침 일찍 새보기를 나갔다. 부지런했던 나는 우리 논의 벼가 잘 자란 것이 너무 좋았다.
벼가 익어가며 고개를 조금씩 수그리기 시작하는데, 촉새와 참새떼가 볏물을
자꾸 훑어 먹는 것이었다.
촉새는 예쁘게 생긴 작은 새이지만
벼 한 포기를 발로 꾹 누르고 붙잡아,
부리로 이삭을 쭉 훑어 먹을 때는
너무나 얄미운 도둑이었다.
혼자 다니며 한 포기씩 붙잡아 먹어치우면, 고개 숙이며 영글어가던 귀여운 이삭들은
갑자기 속이 훅 비어
힘없이 고개를 쳐드는 모습이
마치 죽은 시체같이 보여 슬프고 속상했다.
참새는 또 어땠는지 아는가?
그 녀석들은 꼭 떼를 지어 몰려와
볐대에 몰래 앉아 쌀뜨물을 훑어먹고는
떼 지어 후루룩 달아났다!
얄미운 참새떼들!
내가 촉새나 참새떼를 발견하고
서둘러 쫓아가도,
어느새 다 훑어먹고는
꼬마인 나를 놀리듯 저만치 가버렸다.
그때는 내가 작고 어린것이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눈물이 날 정도였다
(농사일 에피소드 2) 7살
모내기를 할 때, 벼를 가지런히 심기 위해
논 양쪽에서 줄을 잡고 있으면
그 줄에 따라 모를 심는다.
그 줄을 논 줄이라고 하고, 그 줄을 잡는 것을 논 줄잡기라고 한다.
그 시절에는 모가 얼마나 예쁘고 가지런히 심겨있는지를 보고, 그 논 주인의 성격을 파악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도 우리 집 논의 줄을 잡아보게 하셨다. 내가 논 줄잡기를 마치고 나면,
"일곱 살짜리가 논 줄을 야무지게 잘 잡아 벼가 예쁘게 심어졌네!"
라며 동네 어른들께서 웃으며 칭찬해 주셨다.
이웃집 친구 아버지가 자기네 논에도 와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내가 아직 어리다고 절대 허락지 않으셨다.
재미로 시켜본 것이지 농사일을 시키려는 뜻이 아니셨던 것이라고 했다.
아홉 살이 되어서야 한사코 한 번만 와달라는 동네 아저씨 논에 가서 논 줄을 잡았다. 그 아저씨는 나에게 어른의 품삯을 쳐 주시며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일은 동네에 소문이 널리 났고 나에게는 흐뭇한 경험이었다.
(농사 에피소드 3) 8살
8살 무렵에는 그동안 농사일이 번창해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서마지기 반이었던 논이 아홉 마지기가 되었다.
가물었을 때는 논 전체에 저수지 물을 직접 퍼 올려야 했다. 우리 집 논은 평지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있었다. 낮에는 기술자 아저씨들이 했지만 저녁에는 아버지가 직접 해보신 적이 있다.
나무로 된 기계에 올라가 발로 페달을 밟으며 물을 끌어올려 논에 뿜어 주어야 했다.
아버지가 배우며 해보는데, 어린 내가 볼 때 아버지는 그 기술이 서툴러 불안정해 보였다.
아버지가 힘겹게 발로 밟으며 물을 뿜어 올리다가 행여나 미끄러져 다칠까 봐 나는 마음을 졸였다.
논아래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간섭하고 거들어드리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나를 내 어머니는
"둘째는 어릴 때부터 극성맞았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이 말은 똑똑하다는 뜻의 어머니식 표현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똑똑하다고 여기고 옷차림도 고급스럽게 예쁘게 잘 차려 입히면서도 웬일인지 소학교에 보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의 8살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 어릴 적 나의 아버지♡ 자서전 no2 https://brunch.co.kr/@ma-fe/47
※이 글은 어머니의 기억을 기반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