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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Apr 03. 2021

뷰티 인사이드

내면의 아름다움과 This is me (위대한 쇼맨 OST)

< 안톤 반 다이크 – 화가 마르틴 레이카르트 >

- 플랑드르의 거장, 친구에게 '당당함'을 선물하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2층에는 안톤 반 다이크(Antoon van Dyck)의 초상화를 모아둔 방이 있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초상화가인 반 다이크의 작품 중 비슷한 크기의 작품들을 모아서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 마치 영화나 연극의 출연진들을 모아둔 듯한 느낌도 준다. 한 작품, 한 작품 감상하다가 어느 한 작품 앞에서 얼어붙은 듯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바로 화가 마르틴 레이카르트(Marten Ryckaert)의 초상화였다.

     

마르틴 레이카르트는 플랑드르 지방의 화가로서 반 다이크와 친분이 깊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눈빛이다.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공격적이지는 않다. 당당하다는 것이 더 적절 것이다. 사실 그의 눈꼬리는 살짝 밑으로 처져 있어 부드러운 이미지를 줄 수도 있으나 눈빛이 눈매의 부드러움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 모피 옷에다 모피 모자까지 쓰고 있는 데다가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 전반적으로 털 투성이(?)인 이 초상화에서 그의 눈은 유달리 당당함으로  빛다. 사실 모피나 수염은 그의 눈빛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조그만 붓끝으로 이런 눈빛을 창조해 낸 반 다이크의 솜씨는 정말 놀랍다.   


시선을 조금 내려서 손을 보자. 의자 끝을 잡고 있는 오른손은 눈에 들어오지만 왼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레이카르트는 왼팔이 없었다. 선천적인지 사고를 당한 것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어쨌든 그는 왼팔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이제 그의 오른손을 보자. 그의 눈빛만큼이나 강조된 것이 바로 오른손이다. 전반적으로 모피 의상이 이 인물을 가득 덮고 있지만 겉으로 확연히 드러난 두 부위가 얼굴과 오른손이다. 거기다 모피 털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어 자연스레 우리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화가는 왼팔이 없지만 그림 속에 보이는 강인한 오른팔 하나로 그림을 그렸다. 강렬한 눈빛은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내고 반쯤 쥐고 있는 오른손은 장애를 극복한 승리를 나타내는 듯하다. 레이카르트는 죽을 때까지 이 그림을 소중하게 간직했다고 한다. 그림 속 인물의 당당함에 감명받고 반 다이크의 놀라운 솜씨에 감탄하며 둘 사이의 우정에 감동하게 된다.

< 마르틴 레이카르트 – 밭 가는 농부와 이카루스의 추락 >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면 레이카르트의 그림은 어떠한지 궁금해질 것이다. 레이카르트는 풍경화가 특기였다.'밭 가는 농부와 이카루스의 추락’라는 작품로 보건데 그는 고전적인 주제와 이상적인 풍경을 조화시키는 것이 특기였던 듯 하다.




- 스페인의 천재, 그리스 노예에게 ‘지혜’를 부여하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이솝 >

이제 다른 그림으로 넘어가 보자. 허름한 옷,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나이와 성별을 알아보기 힘든 얼굴을 가진 사람이 서 있다. 이 사람이 누구일까. 시대를 넘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꾼 중  명, 이솝이다. 이솝우화의 작가로 알려진 그 이솝이 맞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이솝의 이름이 적혀있다. ‘Aesopvs’라고 적혀있는데 이솝의 그리스식 이름인 아에소포스를 라틴어로 적은 듯하다. 이솝은 기원전 7세기경에 태어나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인물로 현재는 우화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그의 신분은 노예였다. 또한 이솝은 외모가 못생기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노예라는 낮은 신분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추한 외모도 그의 뛰어난 지혜를 가리지 못했다. 이솝의 지혜는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여러 통치자의 자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는 그의 이야기가 어린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소소한 이야기처럼 치부되기도 하지만 이솝우화오히려 어른이 되어 곱씹어보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솝이 인생의 지혜를 꿰뚫고 있었던 것도 놀랍지만 그 지혜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화로 구성한 것은 더 놀랍다.  

    

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먼저 이 작품화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다. 17세기 스페인 예술의 황금 세기(Siglo de oro)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루벤스나 램브란트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 벨라스케스의 명성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벨라스케스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다. 바로크 시대 화가이면서도 ‘과장’보다 ‘사실성’에 무게를 두었다. 이러한 경향 덕에 19세기 인상파와 사실주의 화가들은 벨라스케스에게 깊은 존경을 바쳤다.     


그림 속의 이솝은 벨라스케스의 리얼리즘 영향으로 추한 외모와 허름한 의복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먼저 아래쪽을 보자. 바닥에 놓여있는 빨래통은 그가 노예 신분이었음을 나타낸다. 다음으얼굴과 눈빛을 보자. 다소 푸석해 보이는 피부와 지친 듯한 눈빛. 노예로서 온갖 일에 치이다 보니 피곤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이제 오른손을 보자. 책을 들고 있다. 그가 인류 최고의 우화작가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얼굴을 보자. 더 이상 그의 눈빛은 피곤에 지친 노예의 눈빛이 아니다. 사색에 잠긴 현자의 눈빛인 것이다. 이것이 벨라스케스의 솜씨이다. 과장된 표현은 없다. 게다가 이솝의 외모는 아름답지도 않고 노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모습은 위엄 있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 – 광대 엘 프리모 >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시녀들(일부분) >

벨라스케스의 광대 엘 프리모란 작품도 한 번 보자. 벨라스케스는 당시 궁중에 있던 어릿광대를 종종 그렸다. 그 유명한 ‘시녀들’에도 화면 하단 오른쪽에 어릿광대들이 나온다. 당시 스페인 궁중에는 어릿광대가 여럿 살았는데 그들은 왕궁에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림 속 엘 프리모란 이름의 광대는 난쟁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체적인 장애와 어릿광대라는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의 인물은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다.



- 바로크 시대를 빛 낸 두 거장


앞서 애기한 반 다이크와 벨라스케스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고 둘 다 왕실 초상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반 다이크는 영국 찰스 1세의 궁정에서 일했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였다. 영국 작가 존 퍼먼의 ‘가까이 두고 싶은 서양 미술 이야기’란 책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많은 비평가들은 벨라스케스를 반 다이크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반 다이크가 최선을 다해 덤볐다면 아무도 그를 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은 왠지 벨라스케스는 최선을 다했고 반 다이크는 최선을 안 했다는 전제로 말하는 듯해서 별로 동감하기 힘든 부분이긴 하다. 작가가 영국인이다 보니 영국에서 활동한 반 다이크를 편애한 것인지모르겠다. 화려한 반 다이크와 사실적인 벨라스케스. 화풍면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지만 인물의 내면을 이끌어내는 초상화가로서의 능력은 둘 모두 탁월하다. 




- 난 숨지 않을거야, 나의 내면은 누구보다 아름다우니까

< 위대한 쇼맨 포스터 >

2017년에 개봉한 ‘위대한 쇼맨’이란 영화가 있다. 쇼 비즈니스의 창시자로 여러 가지 논란도 있는 P.T. 바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바넘의 쇼에 출현하는 여러 장애인들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물리치고 당당히 세상 속으로 나아가겠노라고 부르는 노래가 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This is me’라는 곡이다. 영화 속에는 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This is me를 가장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외모나 재력 같이 외면적이거나 물질적인 기준 때문에 한 번쯤 서러워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우리들 대부분은 영화 속 인물들의 노래에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외모지상주의(혹은 물질만능주의)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가해자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를 평가할 때는 내면을 봐주기를 원하면서 – 그 반대인 경우도 있겠지만 – 정작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외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반 다이크가 친구를 그린 초상화나 벨라스케스의 이솝 그림을 볼 때마다 감동받는 것은 내면을 표현하는 화가의 놀라운 솜씨와 더불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내면이란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This inside is me and I’m looking inside of you.


https://youtu.be/h2TLNdaQk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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