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Pop 전성시대
누가 뭐래도 지금은 K-Pop 전성시대이다. K-Pop의 세계적 인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10여 년 전 칠레에서 근무할 당시 K-Pop 콘테스트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다. 오해할까 봐 밝히지만 본인은 전혀 프로뮤지션이 아니다.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쨌든 당시의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2NE1의 뮤직비디오에 맞춰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떼창 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소름이었다. 제일 잘 나가는 것은 비단 2NE1뿐 아니라 K-Pop 그 자체였다. 과연 지금보다 K-Pop이 더 잘 나갈 수 있을까. 그날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지금 돌이켜보면 K-Pop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그때도 잘 나갔지만 지금은 더 잘 나간다.
- K-Pop이 곧 ‘음악’은 아니다.
K-Pop의 인기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일단 훌륭한 아티스트가 많이 출현한다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세계인들이 다양한 국적의 음악을 편견 없이 듣는 시대가 되어간다는 것도 기분 좋은 소식이다. 또 한국의 대중음악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에서도 반갑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 K-Pop의 인기는 마치 우리가 문화 선진국이 된 것 같다는 착시를 준다. 나로서는 한국이 문화 선진국인 지 아닌 지 명확하게 얘기할 권위가 없다. 다만 한국이 경제력에 비해 문화 수준은 부족하다는 것이 개인적 의견이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음악은 크게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 순수음악은 클래식이 있을 것이고 대중음악은 락이나 팝이 있다. 재즈는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의 중간쯤 있는 듯 하다.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음악 장르가 있으나 아티스트와 팬, 모두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대충 이 정도 될 것 같다. 지구상의 생물을 ‘계문강목과속종’으로 나누듯 음악도 그렇게 분류해 본다면 K-Pop은 ‘음악-대중음악-Pop-댄스팝 혹은 힙합’쯤 될 것이다. 그렇다. K-Pop의 수준이 곧 그 나라 음악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K-Pop은 음악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한 줄기일 뿐이다. 한국의 음악시장은 K-Pop의 비중이 너무 크다. K-Pop의 독주는 한국의 음악시장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증이다.
미국을 한 번 보자. 미국의 음악 수준이 높은 것은 대중음악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은 팝뿐 아니라 클래식, 재즈, 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뉴욕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팝이나 힙합부터 떠올릴지 모르지만 이 도시의 또 다른 자랑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다. 미국이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재즈나 락은 말할 필요 없다. 미국의 압도적인 경쟁력은 바로 그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고루 즐길 줄 아는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 음악이라는 나무가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K-Pop의 인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듯 거기에 대한 비판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0년대에 HOT나 젝스키스가 한창 인기를 누릴 때도 아이돌 위주의 음악시장에 대해 쓴소리가 많았다. 그런 쓴소리는 상당히 일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반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꼰대스러운 태도가 거슬려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K-Pop 위주의 음악시장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K-Pop에 대한 지나친 찬사는 결국 전반적인 음악 수준의 정체 혹은 쇠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음악을 ‘나무’에 K-Pop은 ‘가지’에 비교했다.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뿌리다. 그렇다면 음악이라는 나무의 뿌리는 무엇일까. 바로 클래식이고 재즈이다. 뿌리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이지 가지에서 뿌리가 나올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순수음악에서 대중음악이 나오는 것이지 대중음악에서 순수음악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순수음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순수음악 없이는 대중음악의 미래도 없다. K-Pop에만 관심이 쏠리다 보면 클래식이나 재즈 같은 뿌리는 썩어 들어가게 된다. 뿌리가 말라버린 나무에서 K-Pop만 계속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는 없다.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에 시달리는 음악은 클래식, 재즈만이 아니다. 대중음악 내에서도 어둠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장르가 있다. 락 음악이 그 주인공이다. 유독 한국에서는 락이 맥을 못 춘다. 세계적으로 1억 3,000만 장 가까이 팔아치워 무지막지하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메탈리카 조차도 한국에서는 마니아층이 듣는 음악으로 치부된다.
락 히스토리는 클래식이나 재즈처럼 교양의 영역이기도 하다. 즉 락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교양인이 갖춰야 할 소양이다. 락 음악은 기본적으로 밴드 음악이기에 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보컬뿐 아니라 연주인에게도 관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 기형적일 정도로 보컬만 인기를 누린다. 음악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밴드 음악에도 애정을 보여야 한다.
- 수준 높은 관객이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든다
우리는 음악시장의 수준이라고 하면 아티스트에만 초점을 맞추기 쉽다. 즉 훌륭한 아티스트가 많아야 그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수준 높은 아티스트보다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대중이다. 음악을 즐기는 대중의 수준이 높아지면 아티스트나 기획사도 그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내놓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수준 높은 대중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을 들어야 한다. 매일 청바지만 입는 사람이 디자이너에게 뭘 바랄 수 있을 것이며 매일 김치볶음밥만 먹는 사람이 셰프에게 뭘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 한국 음악계를 살리기 위한 -의무감을 가지고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장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마음이 몽글해지는 밤에는 오페라 아리아를 듣고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에는 스무스 재즈를 듣고 회사에서 깨진 날에는 락을 듣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좋은 음악을 찾아 골고루 듣다 보면 음악이라는 나무는 풍성해질 것이고 우리는 그 깊은 그늘 밑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