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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May 28. 2023

유럽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 - 유료로 관람하라

1. 유료로 관람하라


프라도 미술관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무료다. 루브르는 야간 개장의 경우 26세 이하는 무료다. 유럽 미술관에 대해 검색하면 무료 정보가 넘쳐난다. 절약도 좋지만 과연 유럽까지 가서 미술관을 무료로 보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왕이면 무료로 보면 좋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료 관람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입장을 위해 장시간 기다려야 한다. 무료입장 1시간 전쯤 입구에 도착하면 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다. 입장하기도 전에 기다리느라 지쳐버린다. 둘째 무료 입장 시간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도저히 작품을 감상할 분위기가 아니다. 셋째, 시간이 부족하다. 유럽의 유명 미술관은 하루 종일 봐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하다. 하물며 2-3시간의 무료 관람으로 감상이 가능하겠는가. 넷째, 무료로 감상하면 자연히 건성건성 지나치게 된다. 인파에 휩쓸려 30분쯤 다니다 보면 얼른 저녁식사나 하고 싶어 지기 십상이다.


< 프라도 미술관 무료입장을 기다리는 인파. 입장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


프라도 미술관 입장료는 15유로, 한국 돈으로 2만 원이다. 적지 않은 돈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위해서는 최소 3백만 원은 필요하다. 수백만 원의 돈을 써서 모처럼 유럽까지 왔는데 2만 원을 아끼느라 무료 관람에 집착한다면. 이건 이득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손해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2만 원은 사실 터무니없이 저렴하다. 햄버거 세트도 만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인데 수 백점의 명작을 단돈 2만 원에 감상할 수 있다니. 유럽은 예술을 복지의 일환 혹은 전 인류가 누려야 할 유산으로 간주한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의 문턱을 낮춰놓은 것이고 그 덕에 관광객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술관은 꼭 유료로 관람하기 바란다. 당신이 미술관에 2만 원을 지불하면 미술관은 2백만 원, 2천만 원 혹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되돌려 줄 것이다.




2. 아침 첫 일정으로 시작하라


미술관을 언제 방문하는가도 중요하다. 미술관은 개장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이 좋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오전이 가장 컨디션이 좋은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미술 감상은 체력이 필요한 활동이다. 실내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 부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원에서 한 시간 산책하는 것보다 미술관에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체력소모가 많다. 미술 감상은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작업이고 두뇌 활동은 체력 소모로 이어진다.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거나 도서실에서 집중해서 공부하고 나면 허기가 지는 경험을 다들 해 보셨을 것이다.


< 미술관람은 공원에서의 산책이라기보다 지적모험으로 가득 찬 책을 읽는 느낌이다. 두뇌 소비가 만만치 않다. >


피곤한 상태에서는 만사가 귀찮다. 따라서 점심 식사 후에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오전 일정으로 이미 지친 데다가 식사까지 마쳤다면 졸음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미술은 눈으로 즐기는 예술인데 반쯤 감긴 눈으로 봐서야 감흥이 있을 리 없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루브르나 프라도 같은 대형 미술관을 방문하는 경우 아침 일찍 입장해서 오후 내내 그곳에 머무르는 것을 추천한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한 번 입장한 이상 종일 즐기는 것이다. 유럽의 유명 미술관은 워낙 작품 수가 많아 두세 시간으로는 다 소화할 수 없다. 작품을 보다 피곤해지면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하면서 느긋하게 둘러보자. 카페나 식당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하겠다.




3. 미술사의 흐름을 음미하며 움직여라


드디어 미술관에 입장했다.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대부분 미술관에서 배포하는 팜플랫을 보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즉 동선을 수립하는 것이다. 미술관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동선을 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명작 위주로 움직이거나 효율성 관점에서 움직이거나. 첫 번째 방식은 소위 유명한 작품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장 덜 걷는 루트를 짜는 것이다. 둘 다 추천할만한 방식이 아니다.


< 루브르 박물관 팜플랫 >


일단 명작 위주로 관람 – 이 경우는 ‘감상’보다 ‘관람’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 한다는 것은 그 외의 작품은 스쳐 지나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브르나 프라도 정도 미술관이면 상설 전시품 모두가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특정 작품에만 관심을 쏟으면 다른 걸작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는 드농관 1층, 711호실에 있다. 그 앞에는 늘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있다.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티치아노의 걸작 *‘전원의 합주곡’이 걸려있다. 하지만 별로 사람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나리자 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 서둘러 700호실로 넘어간다. 거기에는 루브르의 또 다른 슈퍼스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들라크루와)’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 조르조네 혹은 티치아노와 조르조네의 공동 작업이라는 설도 있다.


다빈치 못지않은 대가인 티치아노 작품도 외면당하는 마당에 다른 작품들은 오죽하겠는가. 유명 작품만 쫓아다닐 때의 손해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자신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티치아노 작품을 3분만이라도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면 모나리자 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다른 손해는 취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취향은 차별적 시선이 있어야 가질 수 있다. 남들이 좋다는 그림만 봐서는 취향이 생길 턱이 없다. 취향 없이는 ‘미술’ 자체가 좋아질 리도 만무하다.


< 모나리자 앞의 인파. 그림을 보는 건지 사람을 보는 건지 헷갈린다. >


다음으로 효율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출퇴근길이라면 최단 루트가 가장 좋다. 하지만 미술관은 다르다. 미술관에서 동선을 짤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덜 걷는 것이 아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피곤하더라도 더 걷는 것이 맞다. 유럽의 미술관은 구조가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최단 루트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술관을 방 번호순에 따라 옮겨 다니는 것과 미술사의 흐름을 음미하며 옮겨 다니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1층 안내도 >


유럽의 대형 미술관에서는 미술의 흐름을 음미하며 이동해야 한다. 미술의 흐름을 음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장 맵을 보자. 조금 전 얘기했던 드농관 1층이다. 이곳은 서양미술의 주도권이 옮겨가는 과정에 따라 전시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푸른색으로 표시된 703번실에는 ‘그리스’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양미술의 기원이라 할 만하다.


다음으로 708번에서 716번 전시실에서는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이탈리아’ 작품들이 려있다. 중세부터 근세까지 미술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였다. 고딕부터 초기 르네상스, 성기 르네상스, 바로크까지 이어지는 이탈리아 천재들의 눈부신 작품들이 가득하다. 700번, 702번 전시실에는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의 대작들 전시하고 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에 비해 미약했던 프랑스 미술은 18세기 후반부터 저력을 드러내고 19세기에는 포텐이 폭발한다.


정리해 보면 ‘(고대) 그리스 – (중세-근세) 이탈리아 – (19세기) 프랑스’ 순으로 배치해 둔 것인데 이는 서양미술을 주도했던 지역의 흐름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이들 지역만이 미술사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다. 플랑드르, 스페인, 영국 같은 다른 지역도 많은 거장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커다란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로 압축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스페인 미술은 드농관 1층 서쪽 끝에, 영국 미술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 플랑드르 미술은 리슐리외 관 2층에서 감상할 수 있다.


< 좌측부터. 서양미술의 시작, 사모트라케의 니케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엄, 티치아노의 전원의 합주 / 19세기는 프랑스의 것, 들라크루아의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


앞서도 얘기했듯 단순히 번호순 혹은 덜 걸기 위해서 옮겨 다니는 것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혹은 지역 간의 차이는 무엇인지 음미하며 걷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경험이다. 고딕의 영향이 남아있는 ‘르네상스 초기’의 그림과 화가의 테크닉이 정점에 올랐던 ‘바로크 시대’의 그림이 어떻게 다른 지, ‘아름다움’에 천착했던 이탈리아 화가와 ‘사실주의’의 전통이 있는 스페인 화가의 작품이 어떻게 다른 지 예리하게 감상해 보자.


동선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 루브르 전시장 맵을 다시 한번 보기 바란다. 710번 전시실을 보고 나서는 711번으로 이동하기 쉽다. 하지만 앞서 애기한대로 미술사의 흐름을 즐기기 위해 그대로 쭉 712번, 716번으로 이동하자. 즉 710번에서 716번까지 이어지는 긴 갤러리 – 갤러리는 원래 복도를 가리킨다 –를 걸으며 시대별 이탈리아 회화를 끊김 없이 감상한 후 다시 711번 전시실로 되돌아가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고 중간에 711번 전시실로 이동하면 700번, 701번, 702번의 19세기 프랑스 회화관을 거쳐 716번의 이탈리아 전시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힙합을 듣다가 갑자기 30초쯤 록음악을 들은 후 다시 힙합으로 돌아오는 격이다. 물론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섞어 감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별다른 의도가 없는 이상, 물 흐르듯 흐름이 끊기지 않게 감상하는 것이 좋다.


좋은 동선을 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이 속해 있는 카테고리를 눈여겨봐야 한다. 루브르 맵을 다시 보자. 모나리자 그림 위에 ‘Paintings/Italy’라고 적혀 있다. 즉 이 구역에는 이탈리아 회화를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전시장을 이동하면서도 수시로 맵을 체크 하자. 지금 내가 어떤 시대, 어떤 지역의 전시품들을 보고 있는지, 다음 구역은 또 어떠한 지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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