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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Jul 09. 2023

유럽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뮤즈와 함께 하라

10. 뮤즈와 함께 하라     


프라도 미술관에는 ‘뮤즈의 홀’이 있다. 뮤즈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예술과 학문을 관장하는 여신들이다. 뮤즈는 영어식 표현이고 고대 그리스어로는 ‘무사’라고 한다. 홀 안에는 아홉 명의 여신들이 조각상으로 모셔져 있다. 전시실 입구 코 앞에 있어 대부분 여기를 거쳐 가게 되지만 이 장소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 프라도 미술관, 뮤즈의 홀 >

프라도를 방문한다면 잠시 이곳에 서서 여신들을 곰곰이 살펴보기 바란다. 여신들이 아폴론과 함께 머무는 장소를 파르나소스라고 한다. 홀 안을 채우고 있는 여신상들은 프라도가 곧 뮤지엄이자 – 뮤지엄이라는 단어가 뮤즈에서 파생된 것이다 - 파르나소스임을 상기시켜 준다.  

    

미술관은 휴식을 위해서 간다. 이 문장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분이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분이라면 방문 목적이 다를 수 있지만. 그럼 미술관은 '힐링'을 위해서 가는 걸까? 여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휴식을 위해서는 힐링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휴식 = 힐링'은 아니다. 미술관에서의 휴식은 힐링과 다르다. 그럼 미술관에 왜 가는 걸까. 미술관은 '자극'을 받기 위해 가는 장소이다.

    

사람은 자극을 통해 휴식할 수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휴가 기간에는 꼭 책을 읽는다. 어떤 사람들은 휴가를 이용해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기도 한다. 만약 휴식이란 것이 따뜻한 해변에 누워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왜 많은 사람들이 금쪽같은 휴가 기간에 정식적, 육체적 자극을 즐기겠는가? 우리가 모처럼의 휴식 시간에 자극을 추구하는 이유는 자극은 곧 권태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 자극을 통해 휴식할 수 있다. >

    

사무실에서나 잠자리에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은 '상처'나 '피로' 때문만이 아니다. '권태' 때문이기도 하다. 혹자들은 권태를 할 일 없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배부른 고민쯤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권태는 할 일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호기심이나 감수성,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 같은 것들이 무뎌질 때 생긴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권태에 빠지기 쉽다. 소위 '배부른 사람'은 권태보다는 무기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힐링'이 아니라 '자극'이다. 미술관은 자극으로 가득한 곳이다.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결국 미술관은 권태에 빠진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장소인 것이다.     


이제 뮤즈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뮤즈는 흔히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고 한다. 감상자 입장에서는 영감을 자극이라는 단어로 살짝 바꿔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신들은 그림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생각에 잠기거나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다.     




< 찬가의 여신 폴리힘니아와 반 다이크의 마르틴 레이카르트의 초상화 >


반 다이크가 그린 ‘마르틴 레이카르트의 초상화’라는 작품이 있다. 초상화 속 인물도 역시 화가였으며 반 다이크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왼 팔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찬가의 여신, 폴리힘니아는 장애를 극복하고 화가가 된 레이카르트를 예찬하고 있다. 여신은 친구에게 긍지를 선물해 준 반 다이크도 찬양하고 있다.     


< 비극의 여신 멜포메네와 데그라인의 테루엘의 연인들 >


안토니오스 뮤노스 데그라인‘테루엘의 연인들’ 앞에서는 멜포메네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멜포메네는 비극을 관장한다. 그림 속 남자는 부유한 집안의 연인과 결혼하기 위해 무려 5년을 전쟁터에서 보내지만 끝내 여성과 맺어지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남자를 너무 사랑했던 그 녀 역시 남자 곁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5년의 고통도 견딜 수 있었지만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곧바로 숨을 거둬버리고 마는 지극한 사랑.     




그림 앞에서 여신과 나누게 되는 이야기가 반드시 교훈이나 격렬한 감정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만으로도 자극을 받을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공자님의 유명한 말씀이 있지 않나.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역사의 여신 클레이오와 티치아노의 종교를 구하러 온 스페인 >


티치아노의 작품, ‘종교를 구하러 온 스페인’을 보자. 역사의 여신, 클레이오가 유럽 그리스도교 세력의 가장 극적인 승리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1571년 레판토 앞바다에서 그리스도교 세력 연합군인 신성동맹과 당시 거칠 것 없던 오스만 제국 간에 해전이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신성동맹이 승리하게 되는데 신성동맹의 주축이 스페인이었다. 스페인 해군은 이 전투로 ‘무적함대’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는다.    

 

그림 왼쪽, 한 손에는 창, 한 손에는 방패를 든 여성이 바로 ‘스페인’이다. 그 녀 뒤에는 칼을 치켜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이 보인다. 오른쪽에 살짝 몸을 숙이고 있는 여성은 ‘기독교’이다. 그 녀의 발치에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성배가 놓여있다. 뒤편에 있는 나무에는 무서운 뱀들이 꿈틀대고 있다.


뱀으로 상징되는 이교도로 인해 위기에 빠진 가냘픈 여인(그리스도교).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스페인. 모든 그림 속에서 뭔가 배울 점을 찾을 필요는 없다. 티치아노의 그림이 들려주는 역사적 사건과 그림 속 *알레고리는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로워 더운 여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듯한 짜릿함을 전해준다.

* 미술에서 알레고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티치아노의 그림으로 예를 들자면 무기를 든 여성은 스페인, 몸을 숙인 여성은 그리스도교, 뱀은 이교도를 상징한다.      




한국 사회가 특히나 팍팍해서 그런 걸까. 한국에는 유독 '힐링'이 화두이다. SBS가 '힐링 캠프'를 방영한 2011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힐링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자존감’이라는 개념도 한국에서는 ‘힐링’의 유어쯤으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휴식시간에 하는 대부분의 활동을 힐링과 연관시킨다. 힐링을 위해 먹고 힐링을 위해 마시고 힐링을 위해 운동하고 힐링을 위해 영화를 보고 힐링을 위해 읽고 힐링을 위해 쓰고. 미술도 예외가 아닌지라 곧장 미술을 힐링과 연결시킨다. 하지만 미술관은 '힐링 캠프'가 아니다. 미술관은 '파르나소스'이다.   

  

그림을 보고 힐링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힐링에 초점을 두어서는 미술을 깊이 음미할 수 없다. 힐링은 휘발성이 강하다. 힐링을 위해서 미술관을 찾은 사람은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림 앞에서 잠시 따뜻한 기운을 받았다고 해서 나를 둘러싼 세상이 갑자기 상냥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극'은 그렇지 않다. 강렬한 예술적 경험이 주는 자극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의문 투성이고 불합리함으로 가득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뮤즈와 나눈 이야기는 '불굴의 정신''사랑의 위대함''배우는 즐거움'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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