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니콜라오스에 얽힌 이야기와 블루스 캐럴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말이다. 한국은 과하다 싶을 만큼 크리스마스를 '로맨틱 홀리데이'로 마케팅하지만 - '솔로라도 괜찮아!'라는 클리셰도 같은 맥락의 상술이다. - 크리스마스는 연애와 상관없이 설레는 휴일이다. 크리스천 전통의 축일과 남녀 간의 로맨스를 엮은 난리통은 밸런타인데이 하나로 충분하다.
크리스마스가 설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산타클로스다. 어른이 되면 산타클로스나 선물과는 멀어지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받는 입장이 아니라 주는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산타는 훈훈한 존재이다. 가족을 위해서든 연인을 위해서든 혹은 스스로를 위해서든. 산타가 되어 선물을 구입할 때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산타클로스가 성 니콜라오스의 변형이다는 사실은 거의 상식처럼 되어 있으나 성인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 니콜라오스의 일화를 보면 산타클로스다운 면모도 있고 의외의 면모도 있다. 산타클로스가 된 성인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만나보자.
이 그림은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 전설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작품이다. 다시 말하지만 산타클로스의 원형은 성 니콜라오스다. 성 니콜라오스는 로마황제가 크리스천교를 승인(정확히 말하면 관용)하기 직전인 3세기 후반에 태어났다. 3세기 후반이란 시기는 다음에 얘기할 흥미로운 전설과도 연관이 있다. 성인이 태어난 곳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튀르키예이다. 현재 튀르키예가 위치하고 있는 소아시아 지역은 당시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다. 성 니콜라오스를 보통 '뮈라의 대주교'라고 부르는 데 뮈라가 바로 지금의 튀르키예 땅에 있다.
성 니콜라오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호위호식하며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온통 마음이 가 있었다. 하루는 몰락한 귀족 한 명이 세 딸을 시집보낼 재산이 없어 세 딸 모두 윤락녀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제 산타클로스 전설이 탄생할 시간이다. 성 니콜라오스는 밤 중에 그 집 앞을 찾아가 금화가 든 꾸러미 하나를 창문 틈새로 던져 넣는다.
뜻밖의 행운으로 그 귀족은 첫 째 딸을 시집보낼 수 있었다. 경사가 있고 얼마 지나 지 않아 두 번째 꾸러미가 날아들어온다. 덕분에 둘째 딸도 무사히 시집을 간다. 기적 같은 선물에 감동한 귀족은 어떻게 해서든 은인의 얼굴을 보고 감사를 전하고 싶어졌다.
성인이 마지막 셋째 딸을 위해 꾸러미를 던져 넣던 날. 기다리고 있던 귀족은 전속력으로 집 밖으로 달려 나가 성인을 뒤쫓는다. 성인도 전력 질주하며 달아나려 했지만 귀족에게 따라 잡히고 만다. 귀족은 은인의 발에 입을 맞추며 거듭 감사를 표시한다. 성인은 절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한다.
이것이 우리가 결코 산타클로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성 니콜라오스는 마태복음 6장 3절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제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15세기 초기의 르네상스 화가, 젠틸레 파브리아노의 작품이다. 왼쪽에 성인이 금화 꾸러미를 던져 넣고 있고 오른쪽에는 귀족과 세 딸이 보인다. 이 그림은 성 니콜라오스가 한 번에 금화 꾸러미 세 개를 던져 넣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 안에 수 차례에 걸쳐 금화를 던져 넣는 장면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젠틸레 파브리아노는 중세 고딕과 초기 르네상스에 걸쳐 있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르네상스 그림에 비해 다소 어색해 보인다. 창가의 성 니콜라오스는 중력을 무시하고 허공에 붕 떠있는 듯하다. 아버지와 세 딸이 있는 실내는 감상자 입장에서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할 텐데 연극 무대 장치처럼 한쪽 벽면이 뻥 뚫려있다.
고딕의 흔적이 있는 그림을 보면 자칫 실소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파브리아노의 작품에는 종교적인 엄숙함과 더불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나름의 고심이 담겨 있다.
파브리아노의 작품은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르네상스적인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림 속에서 일직선으로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세 딸을 보자. 나름의 공간감이 있어 가장 상단에 있는 딸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세 딸의 포즈에서는 에너지와 리듬감이 느껴진다. 첫 째 딸은 (감상자 입장에서) 왼쪽으로 옷을 벗고 있고 둘째 딸은 오른쪽으로 두건을 풀고 있으며 마지막 셋째 딸은 아래로 아버지의 바지를 벗겨 주고 있다. 왼쪽, 오른쪽, 아래쪽. 쿵쿵딱! 차렷 자세에서 최소한의 동작만 보여주는 고딕 그림에 비해 훨씬 생동감이 있다.
여담이지만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는 딸들의 모습에서 효녀 심청이 떠오른다. 심청에게도 공약미 삼백석을 마련해 줄 은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심청에게는 성 니콜라오스 대신 용왕님이 있었다.)
그림 속 성 니콜라오스는 오른손을 번쩍 들고 있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하이파이브는 아닐 테고. 이 그림은 성 니콜라오스가 뺨을 때리기 직전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이 성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전설은 많지만 성인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니콜라오스는 왜 뺨을 후려쳤을까.
앞서 성인이 태어난 시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성인이 태어난 3세기 후반은 아직 크리스천교가 공인되기 전이었다. 성인이 활동하던 시기에 가톨릭 역사상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데 그중 하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일이고 또 하나가 니케아 공의회이다. 밀라노 칙령에 비해 니케아 공의회는 덜 알려져 있지만 가톨릭 역사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이벤트라 알아두면 유용하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크리스천교 교리 중 하나인 '삼위일체'가 확립되었다. 당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설과 예수님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라는 설. 전자를 옹호하는 자들을 아타나시우스파라고 하고 후자를 옹호하는 자들을 아리우스 파라고 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아타나시우스파의 의견이 채택되고 그 영향으로 '삼위일체'가 가톨릭의 공식 교리가 된다.
성 니콜라오스는 '열혈' 아타나시우스파였다고 한다.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성인은 아리우스 파의 의견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성 니콜라오스는 아리우스 파 성직자 중 한 명의 뺨을 때리고 만다. 이 이야기가 워낙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구글에 'Nicholas slapping'이라고만 검색해도 여러 이미지와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런데 정작 성 니콜라오스가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고 한다. 여러 역사가와 교회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가운데 어떤 이는 니콜라오스가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감옥에 갇히게 되어 참석자 리스트에 없다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의 인자한 모습을 생각해 보면 뺨을 때리는 성인의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다. 물론 당시의 교리 논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결국 성인도 인간인 이상 부족한 구석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성 니콜라오스 축제 장면을 보자.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장르화 전문 화가, 얀 스테인의 '니콜라오스 축제'라는 작품이다. 유럽 고전회화에서는 풍속화를 장르화라고 부른다. 이 그림 속에는 지금의 크리스마스의 원형이 되는 풍속들이 잘 녹아들어 가 있다.
왼쪽 하단의 조그마한 여자 아이는 한쪽 팔에 선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들고 행복해하고 있다. 그 녀의 발치에도 맛있는 빵과 과자, 과일이 한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다. 한 해 동안 착한 아이로 지내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반면 그 녀 뒤에 모자를 쓰고 있는 아이는 울음을 떠뜨리고 있다. 남자아이 뒤에 누나인 듯 보이는 소녀는 빈 구두를 보여주고 있다. 이 소년은 일 년간 부모님 속을 어지간히 썩였나 보다. 성 니콜라오스는 이 소년의 구두에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화면 오른쪽 어두운 후면부에는 꽤나 장성한 소년이 동생들에게 굴뚝 위를 가리키고 있다. 성인이 굴뚝을 타고 내려왔다고 얘기해 주는 것이다. 그림 속 가장 뒷 편의 할머니는 커튼을 살짝 걷고 있다. 아마도 우는 아이를 위한 선물을 감춰둔 것일 테다.
이 그림은 한국의 가장 유명한 풍속화 한 점을 떠올리게도 한다. 화면 속 우는 아이와 그 아이를 가르치며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김홍도의 서당도가 떠오른다. 서당도에는 훈장 선생님에게 회초리를 맞고서 울고 있는 아이와 그 아이를 보며 키득거리는 아이들이 있다. 울고 있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지만 얀 스테인의 그림 속 우는 아이도 그렇고 김홍도 그림 속의 우는 아이도 그렇고 미소를 안겨 준다. 그림 속의 정서가 '가학'이 아니라 '해학'이기 때문이리라.
얀 스테인은 17세기 네덜란드 서민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한 바탕 난장판이 벌어진 장면을 실감 나게 그려 어지러운 광경을 가리켜 '얀 스테인스럽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얀 스테인의 성 니콜라우스 축제 속 장면은 현재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도 큰 차이가 없어 과자 바구니에 코카콜라 병만 있으면 20세기에 만든 포스터 같이 보일 것이다.
사족 한 가지. 그림 왼쪽 하단의 과자 바구니에는 우리에게 낯 잊은 격자무늬 과자가 들어있다. 지금도 카페에서 종종 먹곤 하는 네덜란드 전통 과자, 스트롭 와플이다. 이 과자의 역사가 꽤나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속화(혹은 장르화)에서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면 왠지 반갑다.
크리스마스라면 캐럴이 빠질 수 없다. 캐럴은 팝,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로 편곡되어 왔다. 그중 산타클로스에게 어울리는 장르는 무엇일까. 넉넉한 덩치에 구수한 미소를 짓는 산타클로스를 보면 블루스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스윙감이 일품인 텍사스 블루스가 적격이다.
Merry Axemas, A Guitar Christmas라는 앨범이 있다. 뛰어난 기타리스트들이 자신의 감성으로 캐럴을 편곡, 연주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이 앨범의 첫 곡이 백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케니 웨인 쉐퍼드가 연주하는 '루돌프 사슴코'이다. 흥겨운 스윙 리듬 위로 펼쳐지는 화려한 블루스 기타 사운드가 일품이다. 기타 톤이 워낙 진해 듣고 있다 보면 살짝 인상을 쓰게 된다. 기타리스트들이 솔로를 연주할 때 짓는 그 표정말이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일 년에 두 번, 즉 여름과 겨울에 휴가 시즌이 주어진다. 그중 겨울 시즌에 마음이 더 몽글해진다. 하반기를 생각하면 은근히 초조한 7,8월보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를 도닥일 수 있는 연말연시가 더 포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Merry Christmas!
https://youtu.be/NarGvutAKAI?si=111DFk23geuUgzu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