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주의
언제부터인가 내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꿀꿀해지는 날이면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해치우는데 집중하기보다는, 이를테면 출퇴근을 위해 차에 탔을 때 바로 출발하지 않고 듣고 싶은 노래를 틀고 출발한다던지 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힘들었던 날에는 먹고 싶은 디저트를 사 먹는다던지 다이어트 때문에 안된다면 그나마 덜 양심에 찔리는 과일이 올라간 그릭요거트라도 먹어준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내게 선물하는 것이다. 사치인 것도 같지만, 이런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는 튼튼한 무언가가 되어준다고 믿는다. 현실적인 성격이라 가끔은 각설하고 눈앞의 일을 해내라고 스스로 몰아붙일 때도 있다. 이전 같으면 막 해내는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아주 잠깐은 ‘내가 왜 그럴까‘, ’이 일이 나에게 왜 힘들게 느껴질까‘ 살피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도 만사가 힘들게 느껴져 조금은 내려놓고 쉬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꽤나 여유없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가끔 가족들이 제발 쉬라 할 정도로 각성해서 일을 미친 듯이 처리하는 각성 타임이 있다. 주의점은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 힘이 안나는 지금, 2년 전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서 켜졌던 각성타임의 배터리가 다 된 것 같다. 배터리가 꺼지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원래의 까칠한 자아가 자기주장을 시작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엄마 몫까지 동생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에 씌었던 행동과 말의 필터가 꺼지고 슬금슬금 날 것의 그대로가 발휘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새삼 그동안 내가 각성해야 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곱씹게 되었다.
아마도 ‘컨테이너 이사’와 ‘엄마의 죽음’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중학교 입학 후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컨테이너로 이사 가야 했던 때 아마 엄마는 ‘갈 때까지 갔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사 한 직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마주하며 조금은 우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때마침 14살의 나는 첫 번째 각성타임을 맞이하면서 “엄마 우리 그릇 이 박스에 담았었잖아!”라며 쌓여있는 이삿집을 찾아주기도, “엄마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자서전을 쓴다면 ‘컨테이너에서도 살아봤다.’라고 쓸 수 있겠어!” 이런 애늙은이 같은 말로 엄마를 위로하기도 했다. 당시 엄마가 “요즘엔 ㅇㅇ이 덕에 힘이 난다.”라고 말씀하셨었으니 아마 내 첫 번째 각성은 목적지에 잘 다다랐던 것 같다. 이 밖에도 공부를 그럭저럭했던 장기를 살려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는 만행까지 저질렀었으나 아쉽게도 성적은 중학교 1학년을 최고점으로 점점 하락세를 탔다. 어려운 환경에 열심히 공부하는 기특한 딸이 되어 부모님의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컨테이너 살아도 전교 1등 하는 멋진 딸’ 막이래…. 하지만 아쉽게 실패!
자 그리고 두 번째 각성타임, ‘엄마의 죽음’이다. 엄마는 내 스물 여섯번째 생일날 응급실에 실려가 병원에서 두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엄마가 병원에서 버텨주었던 시간은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불어나는 병원비에 대한 두려움과 괴롭기만 하고 깨어나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마 이 시기가 내 인생에서 극한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성남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기에 대전과 성남을 오가며 육체적으로도 또 당연하게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후에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고 남겨진 많은 것들을 처리하는 한 달을 보내면서 그 과정에는 몰상식한 친척들의 만행을 겪어야 하는 일도, 행정 처리를 위해 수없이 엄마의 사망을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일도 포함되었다. 처음 입 밖으로 낼 때는 울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었는데 계속 반복하다 보니 제법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사람은 슬프게도 적응한다. 엄마가 없는 세상을 적응해버린 내가 슬프다.
2년이라는 길지도 짧을지도 모를 시간 동안 밀도 있게 많은 일들을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세가 기운 집에서 살아온 것치고는 세상 물정을 몰랐던 나인데 그저 모른다고 할 수 있는 내 뒤에는 우리 엄마가 있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곁에서 도와준 이들에게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여유 있는 사람이고 싶고, 불쌍하지 않고 싶어 성공하고 싶다. 지금은 엄마를 떠나보낸 후 남은 60대의 남편과 20대의 딸 둘, 조금은 외롭고 슬퍼 보일 수 있는 모냥새지만 성공해서 누구도 남은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게 할 거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들의 눈을 너무 의식하나 싶기도 하지만, 언젠간 의식하지 않고 행복한 우리가 되겠거니 생각한다.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설렁설렁해 보이지만 그 안은 꽤나 열정적인 오늘의 푸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