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안 Jun 18. 2023

내가 좋아하는 사진

20년이 지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들



아침에 촬영 나가기 전 아침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볼일이 있어 찾다가 필터로 원래의 색이 많이 변색된 사진을 보게 됐다. 객관적으로 그 사진의 색감은 예뻤다. 아마도 사람들도 그 사진을 잘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높았다. 흠을 잡을 포인트도 없었다. 화보였고, 컨셉에 맞게 잘 찍은 사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찍어 달라고 하면 내 사진이라고 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가끔은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찾기도 하는 법이다. 내 사진 취향이란 무엇인지 정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potland 2019


나는 색을 그렇게 많이 만지는 편이 아니다. 원래의 색감에서 화이트 발란스로 감정을 표현하는 건 그 사람의 표현영역이라 생각하는 것에 동의하고 나 또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요즘 사진들은 일정 필터를 받아서 일괄적으로 그 분위기를 연출한다. ( 물론 자기가 조금씩 조정은 하겠지만)


나도 때로 필터를 안 써본 것은 아니다. 필터로 작업한 사진으로 저장해 두면, 몇 년 뒤 시간이 지나서 보면 영락없이 촌스러운 거다. 그때 그 순간이 왜곡되어 기록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색을 많이 보정을 한 것이 아니었더라도 그랬다. 그래서 그걸 깨달은 어느 날부터는 필터는 건드리지도 깔지도 않는다.


내가 하나하나 만져서 원래의 색을 가능한 벗어나지 않고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색감이라면 내 상상과 그 사진의 갭이 적다. 내가 느끼기엔 초록이 더 쨍했는데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했다면 그 부분을 살린다. 또는 내가 본 아이의 스카프가 더 샛노랬는데 카메라에는 밋밋하게 담겼다면 노랑의 색조를 높이는 작업은 한다. 그건 내가 담고 싶었고 보았던 순간을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하고 또는 더 잘 전하기 위한 작업이다. 하지만, 그냥 더 예쁘게 보이려고 또는 감정과 그 분위기와 무관하게 요즘 잘 쓰는 트렌드 색감을 위해 조금이라도 따라 했다가는 그 사진을 다시 볼 때 부끄러운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은 더욱 필터는 건드리지도 않거니와 세팅값을 미리 두지도 않는다. 촬영 건마다의 각자의 감정과 그 기록을 위한 최소한의 색을 보정한다. 색으로 만지는 감정보다, 순간의 기록에 더 희열을 느낀다. 그때 아니면 담아낼 수 없는 사진 속에는 그 시간과 공간 그리고 피사체와 그걸 담는 나의 감정이 담겨있다. 거기에 색을 더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아침을 먹으며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로 열변을 토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좋아하는 거지. 기록이 중요한 사람이니까. "


영종도 가는 길 2022


그래 맞다. 나는 요즘 특히나 아카이빙하고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들을 많이 촬영하고 있었고, 인위적으로 촬영하고 보정하는 것들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더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개인작업 또한 누군가는 CG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사진을 아날로그로 무식하게 촬영을 한다. 그건, 그 촬영하는 과정자체도 작업의 일종이기 때문인데 작가마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그 과정 사이에서의 취사선택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을 찍었더라도, 본격적으로 내 돈으로 카메라를 사서 자주 찍었던 건 스무 살부터였으니 사진을 시작한 지 20년쯤 되었다 치자. 그리고 사진관을 열어서 돈을 받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이제 10년이 넘어섰다. 이제야 내가 어떤 사진을 진짜 좋아하고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물론 또 앞으로 변할 수도 있겠지만, 몇 년간 찍으면서 느꼈던 기쁨과 슬픔 속에서 나의 방향을 잡아간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핸드폰으로도 충분히 카메라보다 더 잘 찍을 수 있을 만큼 기술도 발전했고, 카메라 보급률도 높아졌다. 누구보다 잘 찍겠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다짐이고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찾고 그 감정과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계속 찍으면 될 것이다. 나만의 눈으로.


더 잘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는 그것이 주제인지 시선인지 기술적 문제인지를 잘 파악해 볼 필요도 있다. 잘 찍는 방법은 너무나 쉽게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무엇을 더 잘 찍고 싶은지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답을 찾기가 더 쉬워지니까.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10년을 돈 받고 사진 찍어주면서 살았는데, 이제야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이겠다 싶다. 앞으로 30년은 거뜬히 찍을 수 있다. 10년, 20년을 해도 질리지 않고 더 잘 해내고 싶어서 오늘도 촬영하고 고민하니까.


사진 by 조승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