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들: 사유하는 사진관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존재를 기록하는 초상 작업

by 마안




2014년, 은평구 대조동의 20년 된 작은 건물 2층에서 사진관을 열었다. 그리고 12년 동안 운영했다. 2025년 12월, 나는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기 위해 멈춤을 선언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지난 12년은 분명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오래도록 한 가지 불편함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잘못된 재현에 오랫동안 공모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인물 보정을 하는 과정에서 늘 갈등이 있었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고객이 원하는 모습에 맞출 것인가. 나는 늘 그 사이에 혼자 서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고민이 불필요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반면 손님의 바람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나의 작업과 분위기를 알고 찾아오고, 오래된 단골도 많았다. 그럼에도 작업 속에서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갈등은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이 고민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그 작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다시 분명히 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의 기준에서 고객이 좋아할 것 같은 수정을 하면서도 , '왜곡된 자기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 이를 테면 나는 왜 저렇게 날씬하지 못한 걸까, 왜 얼굴이 하얗지 않은거지? 등) 문화적 억압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진가로서, 이미지 제작자로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고, 지속하고 싶은 방향성을 점검하고, 또 내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냥 단순히 사람이 많이 오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예약이 너무 많이 들어올 때는 오히려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촬영하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비하고, 의미없는 (분명 그 시간들이 의미 없지 않았을 테지만), 조금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멈추고 싶었다. '그냥' 돈을 받고 찍어드리는 건 내가 아니라 기계가 하는 거니까.


그래서인지 1차 작업, 이를테면 색감 보정이나 셀렉은 빠르게 해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는 마음의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인물 보정이 필요한 사진 앞에서는 자꾸 손이 멈췄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일이 밀리곤 했다.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보다 세속적 기준에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얼굴을 원한다. 그런데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누구의 장단에 맞추기도 어렵다. 나는 인물 보정을 할 때마다 번뇌에 쌓였다. 있는 그대로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깎고 다듬는 일이 불편했다. 사람은 대부분 비대칭이고, 잡티가 있고, 주름이 있고, 살이 있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아름다움과 그렇지 않음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그저 각자의 모양대로 존재할 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나 역시 그 괴리감을 잘 안다. 그래서 더 자주 멈췄고, 더 자주 작업을 미루게 되었다. 이 과정은 내가 사랑하던 사진 작업을 때론 나를 지치게 하는 일로 바꾸어놓았다.


수없이 질문을 던진 끝에 내가 얻은 답은 이것이었다.


나는 정말 사진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 만족을 넘어, 작게나마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정하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자꾸 반대 방향으로 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수정할 수 있는 시대다. 물론 여전히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 원하는 얼굴을 대신 만들어주는 일, 편집으로 성형하듯 바꾸어주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사진을 대하는 가치와는 맞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10년 넘게, 해마다 찾아와주는 단골 손님들이 있다.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그분들께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촬영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사진관의 이름도 바꾸기로 했다. [사실은대단한사진관]이라는 이름 덕분에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사진으로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이름에 대한 애정도 깊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지 않고서는 기존 고객들에게 나의 변화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달라진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할 수도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예약 공지만 올려도 마감되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안전지대에 안주하지 않고 나의 가치와 내 내면의 목소리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함이다. 아마도 대중들에게는 적당한 서비스일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은 어떤 방향이냐고?


보정이 아니라 해석한다.


초상들은 사람을 다른 얼굴로 고치지 않는다.
그 사람의 결이 더 잘 보이도록 정리한다.내가 느낀 결로 최소한의 정리만 할뿐.


촬영 자체가 작은 대화가 된다.


질문과 관찰을 통해 촬영 전후의 시간이 이미 하나의 경험이 되도록한다.

이건 이미 하고 있던 방향이지만, 조금 더 여유있게 가기위한 장치를 하려고 한다.


결과물이 사진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인터뷰를 통해 한 답변들을 함께 아카이빙하고, 텍스트와 함께 담아낸다.


‘나를 보는 경험’ 자체를 선사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의 핵심 가치는 사진 파일 몇 장이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다시 마주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이름을 지었다.



초상들: 사유하는 사진관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존재를 기록하는 초상 작업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이 방향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경험일 것이라고 믿는다.

작고 단단한 새 걸음을 다시 내 딛으려고 한다.


앞으로의 여정을 계속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업데이트 예정!


https://www.instagram.com/oh_great_studio?igsh=eHR5Y2xva2g2bTdk&utm_source=qr



다음 편에는

새로운 작업에 대한 과정을 담아보려고 한다.


정제된 글을 올리려다 결국 계속 미루게 되어

퇴고없이 날것으로 올리는 글들. 눈 감고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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