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뭘 먹지?

2025년 9월 5일의 저녁 식사. 계란감잣국과 쌈채소

by YiXX

시작하는 넋두리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리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았다.

서른 살의 나이부터 12년 자취한 난, 밖에 나가서 사 먹는 것도 귀찮아했고, 집으로 음식을 배달시키는 건 비싸기도 하고, 양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맛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시작했다.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고, 그저 인터넷 선생님들의 레시피를 보며 하나 둘 따라 하다 보니 어느덧 혼자 국 정도는 끓여 먹을 수준은 되었다.


그러다 올해 초, 내 상황이 좋지 않아 지면서 요리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문제가 아니었다.

길게 말할 순 없지만 전부터 쌓이고 쌓이던 문제였고, 그게 올해 터져버린 거다.

모르는 척, 외면하던 문제는 둑이 터져 물살이 몰아치듯 나를 순식간에 덮쳐버렸고, 난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 보니 직접 하는 요리 대신 배달음식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사람들과 밖에서 저녁식사 겸 음주하는 횟수가 늘어버렸다. 덕분에 내 뱃살도 보기 흉할 정도로 늘어버렸다.


이런 와중에 오늘 갑자기 요리를 하게 된 건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 문제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저 문제를 피하고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잘못은 나도 모르게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리니 허무하고 허탈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나와 내 의지의 문제인데, 난 그걸 외면하고 세상만 원망하며 살았으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그래서 요리를 했다. 밤 10시에 늦은 저녁, 오늘의 첫 끼를 먹기 위해 배달앱을 열어 검색하던 중, 집에 있는 재료로 직접 요리해 먹기로 결심했다. 바보 같은 나 자신에게 서툴러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고, 힘 좀 내라는 뜻을 담아서.



오늘의 밥상(계란감잣국과 쌈채소 그리고 엄마반찬)


밤 10시. 밥을 하기 늦은 시간이지만 귀찮다 생각하지 않고 요리에 집중해서 만들었다.

계란감잣국, 쌀밥, 쌈채소와 엄마 반찬과 김치.

이게 사진 찍어서 남에게 자랑할 음식인가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 나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따뜻한 식사였다.


난 흰쌀밥을 좋아한다.

진밥보다는 고슬고슬한 밥을 더 좋아하는데 최근에 '고시히카리'품종의 쌀을 먹어보고는 푹 빠져버렸다. 한국 품종 중에서도 고시히카리와 같은 맛의 품종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사봐야겠다.


최근에 혈당 문제도 있고 건강과 뱃살의 문제가 있어서 잡곡밥에 흰쌀을 섞어 먹고는 있지만, 오늘은 시간의 문제도 있고 오랜만에 흰쌀이 먹고 싶어서 흰 밥을 지었다.


난 국이 있는 식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국물 요리는 제법 할 줄 아는 게 많다.

계란감잣국은 자주 해 먹는 국 중 하나다. 감자의 식감과 계란의 부드러움, 짜지 않고 적당한 간의 담백한 국물도 일품이다.


어려서 파와 양파를 싫어해서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요리를 할 때 파와 양파가 없으면 음식 맛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경험한 뒤로는 일부러 넣기도 한다.


회사도 똑같은 것 같다.

우리 조직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만 쏙 골라내서 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조직 전체의 맛이 이상해진다. 새삼 계란감잣국에서 그런 철학을 깨닫다니, 나도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이다.

KakaoTalk_20250905_224446943_03.jpg
KakaoTalk_20250905_224446943_05.jpg
엄마표 김치와 장조림

엄마가 아들 먹으라고 김치와 장조림을 주셨다.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는 아까워서 못 먹을 정도로 맛이 들었다.

요즘 새삼 느끼는 건데, 엄마가 보내준 김치를 먹을 때마다 괜히 슬퍼진다.

언젠가 이 김치가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날이 올 텐데, 그때 난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확 늙어버렸다. 난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마가 갑자기 늙어버린 게 아니라, 천천히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난 그 정도로 엄마에게 관심이 없었다.


항상 엄마는 나에게 원더우먼 같은 사람이었다. 어떤 잘못을 해도 해결해 주는 영웅.

귀신이 튀어나와도 물리쳐 줄 것 같은 위대한 사람.

그런 엄마가 나이 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김치 한 점 먹었을 뿐인데 코끝이 시큰하다.

쌈채소는 마트에서 주말에 사 온 것들이다.

동생이 보내준 소고기와 먹으려고 샀는데, 먹다 보니 조금 남았다.


평소에도 동생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려고 한다.

나와는 정말 다르다.


생각해 보니 나는 동생에게 이유 없이 뭘 준 적이 있었나? 오늘따라 밥 먹으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정말 주책이다.




하루의 마무리

밤 10시에 밥 좀 했다고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고 싶은 날이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바보 같았기에, 그래서 조금 멈추고 쉬어가고 싶었다.


난 전문 글쟁이가 아니다.

글로 먹고 살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그럴 재주도 없고 용기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오늘 난 내가 먹은 저녁이 무엇인지 소개했지만,

사실 난 오늘,

내가 차린 허름한 밥상에 앉아서

따뜻한 국에 밥 한 끼 먹고 힘 좀 내자고,

스스로를 위로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