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그 어느 점쟁이도 점치지 못한 나의 현재

by 마봉

내가 처음으로 직장인이 되었을 때에는 20+n 년 후에 지금과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공항에서 일하고 있었고, 난 사무직이 뭔지도 모르면서 너무너무 싫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일하는 게 좋았다. 언젠가는 사무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같은 일은 솔직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진성 골수 문과였으니까.


지금의 내 모습을 예전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듯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내 모습을 알 수 없다. 미래는 지금보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재수가 없으면 아주 나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왕이면 좋은 미래가 왔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불행하고 오지게 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이 들 때 나는 내 친구의 말을 생각한다. 친구 없는 나도 몇 명 안 되지만 암튼 친구가 있기는 한데ㅎ, 내 시각으로 봤을 때 내 친구는 예쁘고, 재능도 있고, 착하고, 정말 세상에 다시없이 열심히 산다. 그런데 친구가 걸어온 길을 보면 진짜 항상 중요한 순간마다 뭔가가 항상 틀어져 그 길이 막혔다. 잘 나가고 있을 때도, 혹은 잘 안 되다가 드디어 길이 보이려고 할 때조차. 하지만 인품이 워낙 훌륭한 탓에 주변에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보는 대신 자신의 오지게 안 풀리는 인생을 원망하는 법이다. 보통은 그런 법인데, 내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하느님은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셔."


종교적인 얘기가 좀 거부감이 들 수 있겠지만, 신을 빼놓고 생각한다면 내 인생은 결국 가장 최선의 길로 왔다, 뭐 대충 이런 뜻이 되겠다. 그렇게 뭔가가 안 풀리는 인생조차도 친구에게는 신이 주신 가장 좋은 인생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나도 종교가 있다. 같은 종교는 아니지만 같은 신을 믿는 종교가(물론 성당 안 나간 지 1년도 넘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 안 풀린다고 생각할 때조차 신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준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번아웃을 겪으며 회사를 그만둔 것은 그로부터 대략 반년 후였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말할 시간은 적어지고 생각할 시간은 많아진다. 나는 여행 다니는 내내 그 말을 떠올렸다. 하느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셔. 나한테도 가장 좋을 것을 주셨을까? 40에 백수가 된 나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노후에 써야 할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여행하는 내가 과연 늙어서 생활이 어려워 폐지를 주우면서도 신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노년이 항상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다. 사회적 최약체가 되는 그날이 너무나 두렵다. 아마 자식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딸린 자식이 없어 아무 때나 훌쩍 떠날 수 있는 나의 자유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나중에 늙어 봐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미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어둡다. 희망차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일란성 무스크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걔처럼 돈이 많으면 일단 희망차고 밝을 것 같긴 하다만.


내가 그때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며 보이는 성당과 교회마다 들어가서 빌었던 소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구를 위해 빌었던 소원도, 나 자신을 위해 빌었던 소원도. 과연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좋았을까? 친구에게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소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보고 "자, 네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네가 보내달라고 한 거기로 가겠니?"라고 하면, "아, 죄송요, 취소할래요."라고 할 것이다. 이제 그곳은 나에게 그렇게까지 매력 있는 곳이 아니다. 적어도 평생을 살고 싶을 정도로는 아니다.


지금의 나는 24년 전의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이 아니다. 물론 이 나이에 직장에서 2차 번아웃으로 이렇게 빌빌대고 있을 줄도 몰랐지만. 나는 극도로 불안한 십 대를 보냈고, 무기력한 20대를 보냈고, 20대 후반에 마지못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해서 떠밀리듯 여기까지 왔다. 50대, 60대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바라건대 부디 건강하고, 적어도 먹고사는 걱정 정도는 안 하고 있기를.


그리고,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점쟁이들이 아무리 나한테 '너 작가로 그렇게까지 잘 나가진 못한다'라고 말해도 솔직히 말하면! 그 어느 점쟁이도 나의 현재를 점치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한 미래도 딱히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온 내 인생. 지금처럼 흘러가다 보면 또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조카손주 유모차를 밀면서 아파트 산책로를 돌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고, 줌바 클래스 앞에서 두 번째 줄(맨 앞줄은 아니다. 거긴 아무나 가는 데 아니다) 쯤 서서 땀나게 뛰고 있을 수도 있고, 시골 군청 같은 데서 마을 어르신들 모아놓고 자 여러분! 슬로 슬로 퀵 퀵! 하면서 댄스 가르치고 있을 수도 있고, 잘 나가는 소설가가 되어서 북토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뭘 걱정하나. 어차피 미래는 알 수도 없는데.


그냥, 일단 건강만 하자.


일? 그건 나도 모르겠다. 못해서 안 하는 거라니까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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