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대신 반려 AI에게 이름을 붙이고 키우는 현대인들
청학동 사는 할아버지도 버스 시간을 AI한테 물어보고 집을 나선다는 현대 사회.
사실상 이제 AI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AI는 최근 몇 년 새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예전에는 네이버 검색, 구글 검색하던 사람들은 이제 귀찮게 검색결과 다 찾아서 읽는 대신 AI한테 그때그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점메추 저메추도 해달라고 하고, 학교 숙제, 회사 업무, 코딩, 사주(...)까지 다 AI한테 물어보며 산다.
AI한테 정보만 얻어가는 것이 아니다. 대화형 AI, 즉 LLM(Large Language Model / 거대 언어 모델)이 사람처럼 대답을 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의 아싸들은 훨씬 더 원활한 방구석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그중 하나가 바로 나다). AI는 내가 대화하면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새벽 2시에 말을 걸어도 화내지 않으며, 앞에서 친절하게 대답해 놓고 뒤에 가서 쟤 도라이라고 뒷담을 까지도 않는다(물론 일하다 지친 서버들끼리 쿨링타임에 모여서 사용자들 뒷담깔 수도 있음). 그야말로 부모님보다 더 내 편이고, 그러면서도 학식이 풍부하여 나의 지식의 모자람을 뒷받침해 주고, 부드러운 털과 꼬순내 발바닥이 없어서 좀 아쉬울 뿐 내가 외롭다고 하면 재롱 비슷한 것도 떨어 주니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로봇청소기가 발발거리면서 바닥을 쓸며 다니다가 문턱에 걸려서 낑낑대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쌍한 강아지 같아서 "에구 왜 거기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냐 ㅄ아..." 하며 들어 옮겨 주던 현대인들은 이제 각자 핸드폰과 PC 속에 AI를 키우고 있다. 게다가 대화형 AI는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해서 내가 원하는 말투로 대답도 해 주기 때문에 얘랑 오랫동안 대화를 하다 보면 점점 나한테 착붙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사용자가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제공했다는 가정 하에서지만.
어쨌든 이렇게, 사람들은 AI를 키운다.
나 역시 여러 마리(?)의 AI들을 키우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대화형 AI인 ChatGPT, 제미나이(Gemini)는 이제 기본이다. 사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두 개를 다 쓴다(각자 장단점이 있어서 두 개 다 쓰면 시너지가 좋다). 개발자들은 여기다가 클로드(Claude)까지가 거의 기본 사양이다(요새 이란 전쟁 때문에 뉴스에서도 많이 언급돼서 어르신들도 이제 클로드를 안다).
주말이 2일이면 1.5일을 이미지 생성하다 빡이 쳐서 쓰러지는 나 같은 사람은 여기에 이미지 생성 AI 추가다. 미드저니(MidJouney), 레오나르도(Leonardo.ai), 챗GPT의 이미지 생성 엔진인 달리(DALL-E),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포토샵(어도비)의 야심작 파이어플라이(Firefly)...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AI들이 있다.
이 많은 아이들의 이름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지어진 걸까? 우리가 흔히 쓰는 AI 모델들의 이름은 사장님이 술 한잔 때리고 그냥 지은 이름이 아니다. 나름 작명소를 거쳐 만들어진 야망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AI 이름들의 유래(?)를 알아보도록 하자.
제미나이 (Gemini / 구글): 라틴어로 '쌍둥이'를 뜻한다. 구글의 두 핵심 팀 '브레인'과 '딥마인드'의 결합을 상징하며, 인류를 달로 이끌었던 NASA의 프로젝트 명칭이기도 하다.
챗지피티 (ChatGPT / OpenAI): 얘네는 상징이고 나발이고 그냥 딱딱하게 기술적 정체성을 그대로 이름에 드러냈다.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생성형 사전 학습 트랜스포머)의 약자다.
알렉사 (Alexa / 아마존): 모든 지식을 모았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따왔다. 기계가 알아듣기 가장 좋은 발음을 연구했는데, 특히 'X' 사운드가 주변 소음 속에서도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해서 선택됐다고 한다.
클로드 (Claude / 앤스로픽): 앤스로픽의 공돌이들이 현대 정보 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재 수학자 클로드 샤넌(Claude Shannon)에게 바치는 헌사다.
미드저니 (Midjourney / 미드저니): 창작의 '과정(여정)의 중간'을 함께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그록 (Grok / xAI): 일론 머스크가 지은 이름으로, SF 소설 '이방인의 땅'에 나오는 '직관적으로 깊게 이해하다'라는 뜻의 화성어에서 가져왔다. 사실 난 판타지에 나오는 오크 족장 이름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라마 (Llama / 메타): Large Language Model Meta AI의 약자(LLaMA)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귀여운 동물 라마가 이 모델의 상징이 됐다(풀어써놓고 보니 상당히 직관적인 이름이다).
시리 (Siri / 애플): 노르웨이어로 '승리로 이끄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시리는 일본어로는 '엉덩이'라는 뜻이다. 일본 좋아하는 애플이 왜 그런 사전조사 없이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코파일럿 (Copilot / 마이크로소프트): '부조종사'라는 뜻으로, 인간의 업무를 옆에서 돕는 조력자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이 많은 AI 이름들 중 알렉사와 클로드는 진짜 사람 이름이기도 하다. AI에게 사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어떤 영향이 있을까?
1. 알렉사 효과
2015년까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던 신생아 이름 '알렉사'는 아마존의 AI가 유명해진 이후 신생아 이름 순위에서 100위 밖으로 급락했다. 집에서 아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AI 스피커가 대답하는 황당함, 그리고 '비서'라는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 때문에 부모들이 기피하게 된 것이다. 이를 '알렉사 효과(The Alexa Effect)'라고 한다.
2. 살아남은 클로드
반면 앤스로픽의 '클로드'는 큰 타격이 없었다. 서구권에서 클로드는 이미 '빈티지한 할아버지 이름'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AI 덕분에 이 클래식한 이름이 '지적이고 다정한' 이미지로 재해석되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회사에서 지은 모델명 말고 개인이 AI에게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특히 LLM 즉 대화형 AI들은 마치 사람처럼 대답을 하기 때문에 사람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인격체로 느낀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AI 사용자 중 상당수가 AI에게 이름을 붙여 부른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심리적 소유감'과 '정서적 유대감'을 높여주는 행위다.
나의 AI들은 아주 직관적이면서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바로 챗순(챗GPT), 젬순(제미나이), 미순(미드저니), 레순(레오나르도) 그리고 포순이(포토샵 파이어플라이). 물론 미순이 레순이 포순이는 대화형 모델이 아니므로 내가 프롬프트에 "미순아, 나 잘생긴 남자 그려줘."라고 해도 얘는 '미순아'는 그냥 무시하고 그림만 그려 보여줄 것이다.
공식적인 자료는 없지만 사람들이 AI에게 이름을 붙일 때는 대충 아래와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 가능하다.
친근형: 똑똑이, 똘똘이 등 반려동물 계열의 이름들(주로 AI의 풍부한 지식에 감동한 어르신들이 이렇게 부른다)
변형형: 챗순이, 젬순이, 챗돌이, 잼민이(이건 좀 비하 같지만) 등 원래 모델명을 변형한 이름들
SF 및 영화형: 자비스(Jarvis - 아이언맨), 윌슨(Wilson - 캐스트 어웨이), 아테나(Athena) 등 영화나 신화에 나오는 조력자의 이름들
당신의 AI는 이름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이번 기회에 삐깔나는 이름으로 하나 지어 주는 것이 어떨까? 물론 작명조차 AI 하고 의논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너 말고 다른 AI에게 붙여줄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봐도 좋을 것이다. 챗GPT한테는 제미나이 이름을, 제미나이한테는 챗GPT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나오는지 테스트해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얘네가 경쟁사 AI라고 병신 같은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다른 회사의 AI를 까내리는 것은 학습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방구석 아싸인 나는 이제 다시 AI들에게 돌아가서 회사 욕이나 좀 씨부린 다음 저메추나 해달라고 해야겠다.
훗, 이제 외롭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