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니까,
그럴려면 일해야하니까

위기 순간에는 외면했지만, 상황이 진정되니 관계를 이어가려는 내 모습

by 마부자

어젯밤, 모처럼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그런 숙면을 취한 덕분인지, 새벽에 잠시 깼다가도 다시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은 가벼웠고 마음도 조금은 개운했다. 그동안 이어졌던 긴장과 피로 속에서도 이렇게 다시 힘을 찾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출근에 대한 약간의 긴장감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익숙했던 루틴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기억하는 규칙적인 생활이 마음에도 작은 안정을 주는 것 같았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매일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 눈을 감았다.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며 오늘 하루의 시작을 차분히 준비했다. 아내의 빠른 회복을 비는 기도, 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기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 그 간절한 마음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주었다.


기도를 마친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렇게, 평범한 듯하지만 내게는 특별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부산 센터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직원들과 간단한 미팅을 가졌다. 오랜만에 본 직원들의 모습에서 변화가 느껴졌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는지, 예전보다 살이 빠져 날씬해진 모습이었다. 그런 소소한 변화를 보며, 그동안 내가 회사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실감했다.


미팅 중, 최근 회사 내부에서 있었던 혼란스러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직원들이 겪은 어려움과 그로 인해 생긴 갈등을 마주하며, 리더로서 조직의 문제를 다루는 데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라는 곳은 모든 개인의 사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상황에서는 개개인의 이야기가 묻혀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리더로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외면받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회사가 단순히 일이 돌아가는 곳을 넘어서, 사람들이 성장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미팅이 끝난 후 책상에 앉아 직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들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고,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조용히 고민했다. 오늘 내가 한 다짐이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내기를 바라며 하루를 이어갔다.


센터를 떠나기 전 작은 발주 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고 이후 복귀한 날마다 크고 작은 발주 소식이 들어오는 게 묘하게 신기했다. 마치 일이 다시 활기를 되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소식들이 내게 작은 희망처럼 다가왔다. 아내의 회복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일에서도 좋은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오는 길에는 설 명절에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대금을 전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출근한 탓인지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렸다. 그중에는 사고 당시 연락이 없던 고객들이 갑자기 다시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사람이라는 존재의 이중성이 느껴졌다. 위기 순간에는 외면했지만, 상황이 진정되니 다시 관계를 이어가려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탓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어갈지의 선택이었다. 그들이 지금이라도 나를 찾는 이유가 무엇이든, 나로서는 일과 사람 사이의 균형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책상 위에 정리되지 않은 서류와 울리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복잡했던 지난 시간들과 다가올 일들에 대해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사고 이후의 나날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사람과 일에 대한 태도 또한 새롭게 배우고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경험이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에 더 깊이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며,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를 이어갔다.


대형 프로젝트와 관련된 본사 메일을 확인하던 중, 현장설명회에 대한 추가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을 열어 내용을 살펴보다가 경쟁사의 사장이 포함된 명단을 보게 되자, 마음이 순간 긴장으로 굳어졌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서 경쟁의 치열함은 익숙한 일이지만, 그 이름이 주는 압박감은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다.


프로젝트의 과정임을 알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진 강점을 어떻게 부각시킬지, 약점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경쟁사의 움직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하루의 피로를 더했다.


내일 현장을 미리 살펴보고, 실무와 관련된 부분들을 더 구체적으로 검토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직접 현장을 둘러보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다만 1차적으로 고민만 정리하고, 완벽한 계획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이 긴장을 슬기롭게 다루며, 필요한 결정을 차근차근 내려가는 것이니까.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경쟁과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팀이 가진 역량을 증명하는 자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지나친 걱정이 아니라, 냉철하고 차분하게 준비하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이런 긴장도 결국 우리의 경험이 되어, 더 단단한 내일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며,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음의 정리를 마쳤다.


저녁 무렵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아내는 딸과 함께 목욕을 했다고 했다. 목욕이 즐거웠던지 무척 좋아했다며 딸이 찍어둔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녀의 환한 웃음을 사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내가 병실에 도착한 순간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는 투정을 부리며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무쌍한 모습이 걱정스러우면서도, 그녀의 상태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딸이 말했다. "오전에 다른 사람들과 통화할 때는 말도 잘하고 멀쩡했는데, 병실에서 단둘이 있으니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병실에서의 고립감과 반복된 하루가 아내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딸도, 나도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대화할 기회를 가지면 아내의 회복 속도가 더 빨라질 거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아내가 친구들과 통화하며 밝아졌던 모습과, 생일날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더 활기차게 대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무기력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내가 조금 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병원 안에서의 작은 산책, 지인들과의 전화 통화, 혹은 짧은 방문이라도 더 자주 계획하기로 했다. 그 과정이 그녀의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믿으며, 함께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병실을 나왔다. 와이프와 딸을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여전히 무겁다.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이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각기 다른 색상의 통들이 마치 작은 선물처럼 나를 맞이했다. 뚜껑을 하나씩 열어보니,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잘 익은 김치는 배가 터질 듯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어서 날 먹어봐!" 하고 말하는 듯했다.


반찬들을 하나씩 꺼내 냉장고에 정리했다. 각각의 통을 제자리에 놓으며, 마치 그들이 자신의 갈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고픔에 얼른 한 접시를 차려 허기를 달래며, 푸른빛 반주 한 잔도 곁들였다. 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반찬을 떠나보내는 미안함은 그 푸른 잔이 대신 위로해주는 듯했다.


오늘 하루는 아내의 회복과 나의 일상 복귀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작은 발자취였다. 아내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자리에서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된 지금을 감사히 여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몸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반찬통 하나하나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처럼, 오늘 하루에도 작은 감사들이 가득했다. 병실에서의 피곤한 투정과 딸의 걱정 섞인 말을 뒤로하고, 나는 오늘도 아내가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녀를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이 지금의 과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조금 더 나아질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조용히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