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총을 쏜 젊은 애국청년의 이야기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장편소설 <칼의 노래>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소설집<저만치 혼자서>
산문집<연필로 쓰기> <허송세월> 등이 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인 "여르미 도서관" 님 덕분이었습니다.
삼일절을 맞아 읽으면 의미가 깊을 것 같다며 추천해 주셨고, 저는 그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기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이 책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었지만, 묵직한 마음을 그대로 끌어안고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하얼빈’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독립운동가 안중근.
김훈의 장편소설<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목이 안중근 또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하얼빈"이라는 장소라는 것은 제게 의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과연 그날 총성이 울린 하얼빈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누가 그곳에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여행이라고 표현 할 수 없는 무거운 마음으로 첫장을 넘기며 그날의 하얼빈으로 떠나 봅니다.
김훈의 장편소설<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다룬 작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안중근이 아닌 청년 안중근의 고뇌와 그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책이 기존 역사소설과 결이 다른 점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생각을 교차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한 채 죽을 장소로 가는 자와 사명을 가지고 누군가를 죽일 장소로 가는 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으로 중반까지 풀어가지만
안중근의 시점에서 바라본 책의 이야기는 크게 7개의 단락으로 구분하였습니다.
1. 국권을 포기한 무너진 조선
조선은 일본의 야욕 앞에서 무너져갑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조선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에 보내며, 그는 교묘한 외교술과 무력을 사용해 조선을 장악해 나갑니다. 굴욕적으로 을사늑약(1905년)을 체결하며 외교권을 넘깁니다. 도장하나로 조선을 일본의 손아귀에 맡긴 이 장면은 조선인들에게 깊은 분노를 심어줍니다.
2. 청년 안중근 대의를 품다.
어린 시절 가톨릭 신자로서 평화를 추구했던 안중근은, 일본의 침략과 조선 민중의 고통을 목격하며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처음에는 교육을 통해 민족을 계몽하려 했지만, 일본의 탄압은 더욱 거세지고, 그가 꿈꾸던 평화로운 방식은 무력해 보이기만 합니다. 일본이 조선을 유린하는 데 앞장선 장본인이자, 을사늑약을 주도한 원흉이 바로 이토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는 스스로 결단을 내립니다.
3. 동지(우덕순)와의 만남
홀로 준비하던 안중근은, 뜻을 같이할 우덕순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이토를 처단하는 것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조선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는 점에 뜻을 모읍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오직 조국에 대한 사랑과 독립을 위한 신념만이 존재합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의 행동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역사의 대의를 위한 것임을 확신합니다.
4. 하얼빈으로 가는 길
안중근과 우덕순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독립운동 단체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충분한 자금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며 암살을 실행하기로 결심합니다.
5. 안중근과 이토 운명의 순간
1909년 10월 26일 아침, 하얼빈 역. 기차가 도착하고, 러시아 장교들이 도열한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가 플랫폼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안중근은 숨을 죽이고, 이토가 정면으로 보이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안중근은 총을 발사하고, 세 발의 총알이 이토의 몸을 꿰뚫습니다. 이토는 고꾸라지며 쓰러지고, 안중근은 총을 높이 든 채 외칩니다. "코레아 후라(대한민국 만세)!"
6. 민족을 위한 대한 청년의 대의명분
체포된 안중근은 일본 법정에 서게 되며, 일본 측은 그를 단순한 살인범으로 몰아 처형하려 합니다. 그는 심문 과정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왜 이토를 죽였는지, 조선의 독립이 왜 정당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일본은 그를 정신이상자의 살인자로 세상에 공표하려 했지만, 그의 태도는 오히려 조선인들과 세계에 대한민국 독립의 정당성을 각인시킵니다.
7.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최후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합니다. 그는 형장에서도 담담한 얼굴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신을 하얼빈에 묻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일본은 그의 유해를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는 차가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그의 정신은 조선 독립운동의 불씨가 됩니다.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까닭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복이고,
이토가 살아 있을 때 이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운입니다.
하얼빈 - 272 page
1905년, 스물아홉의 청년 안중근.
그는 시대의 거센 흐름 속에서 고민하고, 선택하고, 결국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재판에 이르는 과정까지, 그의 치열한 여정은 역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닙니다. 안중근의 시선과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을 오가며 실화를 바탕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날의 총성 뒤에 숨겨진 결의와 두려움, 신념과 고독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결심하기까지의 시간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의 감정, 그리고 그 후에 닥친 날들.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가면서, 책을 읽는 내내 어이없음과 분노, 그리고 희열이라는 상반된 감정들이 끊임없이 교차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젊은 청년 안중근과 그의 동료 우덕순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차가우면서도 단호했습니다.
오직 조국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품은 두 젊은이의 다짐 속에서, 두려움과 강한 집념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안중근 의사에게만 집중했지만, 김훈의 <하얼빈>을 통해 비록 자신은 암살 실행에 실패했을지라도 안중근의 곁에 또 다른 독립운동가 우덕순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 역시 감명 깊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인 복수나 단순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의 논리는 명확했고,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왜 이토를 저격했는지, 그리고 조선 독립이 왜 정당한지에 대해 차분하고도 강력한 논리로 일본 법정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끝까지 그의 의거를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로서 안중근의 활약을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을 통해 조선의 나약한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독자로서는 안중근 의사의 신념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토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의 현실은 답답하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그런 조선을 바꾸고자 했던 안중근의 행동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단순히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저격한 사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향해 나아가기까지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그의 신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또한, 이 책은 안중근 의사가 혼자 모든 것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의 곁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고, 그를 하얼빈으로 이끈 사람들 또한 존재했습니다.
독립운동은 한 사람의 결심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이 책을 덮고 나서도 가슴속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1909년 하얼빈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은 안중근 한 사람이었지만,
그 총성은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운 모든 이들의 외침이었습니다.
하얼빈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청년의 신념이 만들어낸 역사이며, 조선을 위해 싸운 모든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울린 총성은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후손들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지켜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다가올 미래의 후손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역사적 사명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