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과 방 안에 들어온 공기를 느끼며 여전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불면의 밤이었지만, 그 여파가 주는 피곤함보다 오히려 새벽을 여는 이 짧은 시간이 이제는 기다려지는 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불면의 후유증이라 여겨 짜증도 불편함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 시간이 주는 고요함 속에서 독서가 나를 단단히 붙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늘 다시 꺼내든 책은 스콧 영의 <울트라러닝>이었다. 1년 전에도 읽었던 책이지만, 오늘 다시 펼친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당시 내가 적어두었던 메모와 그 순간의 감정이 묻어 있는 문장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학으로 MIT를 졸업하고 언어와 기술을 독자적으로 익히며 살아온 저자의 경험은 여전히 신선하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울트라러너”라 명명했고 누구라도 특정한 원칙을 따르면 울트라러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수많은 조언과 경험의 문장들 중 오늘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이 문장이었다.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목표가 될 곳으로 가는 길은 일단 구축되면
그와 상관없이 개발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하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우리는 나중에 그 내용을 배울 때
해답처럼 보이는 정보를 특정하는데
자동으로 주목한다는 것이다.”

스콧 영 <울트라 러닝> 중에서


이 문장은 마치 내 마음에 얇게 켜켜이 쌓인 안개를 걷어내듯 명료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종종 ‘목적’과 ‘목표’를 같은 뜻으로 쓰곤 하지만 사실 두 단어는 다른 층위의 무게를 지닌다.


목적.

목적은 ‘왜’를 묻는다. 삶을 이어가는 근본적 이유이자 존재의 방향을 제시한다. 목표는 그 ‘왜’를 구체화한 ‘무엇’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암 치료라는 현실 속에서 내 목적은 결국 살아남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더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향해 가기 위해 나는 작은 목표들을 세운다.


매일 운동 루틴을 지키는 것. 식사를 조심스럽게 하는 것. 글을 쓰는 습관을 이어가는 것. 이 작은 목표들은 각각의 돌계단이 되어 나를 목적에 다가가게 한다.


살아가는 동안 목적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내 존재의 축과 같다. 하지만 목표는 수시로 변한다.


목적이란 단순히 도착점이 아니다. 목적은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이며,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나침반과도 같다.


목표가 성취와 결과를 말한다면 목적은 존재와 의미를 묻는다. 그래서 목적은 언제나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까워진다.


투병의 시간에서도 나는 자주 목표와 씨름한다. 체중을 유지하는 것, 체력을 보존하는 것, 치료 일정을 끝까지 견디는 것.


그러나 이 모든 목표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목적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더 오래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기에 목표가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


몸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운동의 강도를 조절하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독서 시간을 늘리거나 줄인다. 목표는 목적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조정되는 도구일 뿐이다.


그렇기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이다.


불면의 밤이 내게 준 깨달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잠을 이루지 못한 시간을 허비라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시간조차도 내 삶의 목적을 향해 다가가는 또 하나의 작은 길이 되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이 순간이 내게는 ‘삶을 붙잡는 힘’으로 작동한다.


목적이란 결국 눈앞의 성취를 넘어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이다. 목표는 달성하면 끝나지만 목적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목적은 단 하나의 사건이나 성과로 완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삶 전체를 관통하며 나를 흔들림 없이 붙드는 뿌리와 같다. 암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작은 목표들이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나를 버티게 한 것은 여전히 살아야 한다는 단단한 목적이었다.


목적이 있기에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흔들림 속에서도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불면의 새벽조차도 그 목적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삼는다. 더 오래 살아남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단순하지만 근원적인 이유.


그것이 오늘도 나를 움직이고, 내일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나는 오늘 ‘목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목적은 흔들리는 목표들 사이에서도 나를 붙들어 주는 삶의 근원적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