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에 자리잡았던 암세포가 사라진 기쁨에 망각하고 약 4개월만에 목에 넣었던 햄버거와 기름기 많았던 삼겹살의 흔적은 간밤에 내게 변비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결국 약을 먹고 해결 후 늦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름 세시간 정도 꿈을 꾸며 잘 수 있었고 역시나 새벽 4시 30분경 몸을 일으켰다.
명상을 마치고 서재에 앉아 한권의 책을 꺼내려고 할 때 어제 새벽, 다시 꺼내 읽고 하루종일 병원에 다녀오느라 그대로 책상에 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눈에 들어왔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속에서 내가 붙잡은 단어는 ‘반전’이었다.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을 존경하는 시선으로 시작되지만, 우생학이라는 어두운 현실이 드러나는 순간 독자에게 충격을 던진다.
존경이 배신으로 매혹이 혐오로 바뀌는 과정. 바로 그 전환의 힘이 이 책의 긴장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느 문장이 아닌 이 책 전반에 걸친 바로 그 매력 ‘반전’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을 하기로 했다.
반전.
돌아보면 지난 2년 동안 내 삶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쓰러짐이 내 앞에 절망처럼 다가왔을 때, 빠른 처치 덕분에 지금 다시 웃을 수 있는 반전이 일어났다.
직장생활을 38년 마무리하고 글과 강연이라는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선 것도 내게는 하나의 반전이었다.
평생의 직업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겐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암이라는 존재. 그것은 분명 가장 두렵고도 무거운 반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환자’라는 이름표를 달아야 했고, 죽음이란 단어가 현실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러나 ‘바이러스성 양성암’이라는 말은 그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전환을 만들어냈다. 완치가 가능하다는 말. 치료 끝에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말.
그것들은 모두 내 삶을 반전시키는 또 다른 목소리였다.
나는 반전이란 단순히 상황이 뒤집히는 사건이 아니라, 그 순간 이전까지 내가 붙잡고 있던 ‘세계의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충격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내가 쌓아왔던 가치와 신념, 일상의 리듬마저 무너뜨리는 파문처럼 밀려온다.
그러나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반전은 불안과 혼란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너진 자리를 어떻게든 메우려는 몸부림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몰랐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의 회복은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했다. 단순히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지탱하는 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퇴직은 나에게 ‘내 삶의 두 번째 막은 어떻게 열어야 하는가’를 묻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은 끝났지만 삶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서막이었다.
글과 강연이라는 길은 나에게 또 다른 무대였고 그 무대 위에서 나는 초심자의 서툰 발걸음으로 다시 배우고 있었다.
암은 그 모든 반전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죽음 앞에서 나는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결국 그 답은 거창하지 않았다.
가족과 나 자신. 매일의 작은 루틴과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반전은 두려움만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삶이 끝없이 새롭게 써 내려가는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오히려 반전이 없다면 인생은 예측 가능한 반복으로만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전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내가 원치 않았던 사건조차도 돌아보면 내 삶의 문장을 새롭게 고쳐 쓰는 기회였다.
아내의 병상도, 퇴직의 공허도, 암이라는 그림자도 결국 나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반전을 두려움의 이름이 아니라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게 하는 마침표 없는 쉼표로 받아들이려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그 전환의 순간에도 나는 다시 질문하고 다시 선택하며 다시 살아낼 것이다.
결국 반전은 나를 쓰러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또 다른 나를 일으켜 세우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도 새벽마다 책상 앞에 앉는 이유, 운동 루틴을 이어가는 이유, 글을 쓰며 하루를 기록하는 이유는 그 어떤 반전이 닥쳐도 다시 나답게 살아내기 위함이다.
나는 오늘 ‘반전’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반전은 혼란의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희망으로 변화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