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어제부터 하루 종일 대지를 적시던 빗줄기가 그치질 않았고 밤새 더욱 굵은 기세로 오늘 새벽까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길었던 폭염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던 가을이란 녀석이 마치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연신 노크를 하는 듯했다.


강해진 빗줄기 속에 숨어 있는 찬 냉기의 바람을 맞으며 잠을 깬 나는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오늘 다시 꺼내든 책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이 책은 작년 2월 딸이 읽다가 너무 어렵다며 내게 넘겨준 책이었다. 제목과는 달리 진화와 생물학에 관한 이야기였고 특히 우생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반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반전의 반전, 그리고 또 반전이 이어지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형광펜의 흔적을 따라가던 중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붙잡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믿음.

이 책은 바로 그 믿음이라는 단어의 명암이 공존하는 이야기였다. 믿음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긍정적인 의미만을 떠올린다.


누군가를 믿는 것. 자신을 믿는 것. 믿음은 사회를 밝히고 희망과 용기를 불러오는 원천이다. 그러나 동시에 잘못된 믿음은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때만이 더 큰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진화라는 단어에 믿음이 결합되는 순간 인류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는 힘을 얻었지만 동시에 인간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이 싹텄다.


그것이 바로 우생학의 탄생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구분하고 서열을 매길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은 결국 인류 전체를 향한 커다란 재앙으로 이어졌다.


믿음은 그만큼 강력하다. 어떤 믿음은 사람을 살리고 어떤 믿음은 세상을 무너뜨린다. 문제는 우리가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있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믿음이야말로 매일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치료 과정에서 의사의 한마디를 믿는 일. 이 힘든 치료의 과정의 끝에 완치라는 단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일.


매일 이어가는 운동 루틴이 나를 살린다고 믿는 일. 가족이 끝까지 곁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런 믿음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과도한 믿음은 위험하다. ‘나는 반드시 이 병을 이길 수 있다’라는 믿음이 절망을 극복하는 불꽃이 되기도 하지만 현실과 어긋나는 순간 그것은 깊은 좌절로 바뀌기도 한다.


믿음은 결국 균형의 문제다.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힘을 신뢰하는 것.


때로는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모든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발을 내딛는 용기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믿음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지만 방향을 잃지 않게 한다. 치료가 길어지고 회복이 더딜지라도 나는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다는 믿음을 선택한다.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결국 내일을 열어준다.


믿음은 나를 현실로부터 도피시키는 환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힘이다.


그래서 믿음은 내가 만들어내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이며 동시에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다.


이 책 속 문장처럼 진화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내가 아픈 몸을 일으켜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나는 아직 살아갈 힘이 있다라는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고 믿고 싶다. 아직 넘어야 할 시간은 많지만 오늘 하루를 버틴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믿음은 거창한 기적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회복을 발견하는 눈에서 싹튼다.


나는 오늘 ‘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믿음은 무조건적 긍정이 아니라 불안과 확신의 균형을 잡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