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두운 새벽 서재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싸늘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고 발바닥이 시릴 정도의 차가운 냉기가 나를 맞이했다.
밤새 조금 열려져있던 창틈으로 밀려들었던 차가운 공기가 서재의 온도를 싸늘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아직 남아있는 내 몸속의 잠의 기운을 멀리 쫓아내 주었다.
변하지 않고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오늘도 나는 아직은 변함없는 루틴을 위해 책상 앞에 앉아 불변이라는 주제의 책을 펼쳐 들었다.
변화의 세상 속에서 불변의 이치를 찾는 시간. 오늘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삶의 모든 조건이 좋아지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의 기대치도
똑같이 높아지는 탓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딱한 삶인가.
그것은 아무런 발전 없는 세상을
사는 것만큼이나 끔찍하다.”
불변의 법칙 중에서 - 79pgae
기대.
기대란 미래를 향해 마음을 미리 보내놓는 행위다. 그 마음은 늘 현재보다 나은 무언가를 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방향성 때문에 현재의 가치를 놓치게 만든다.
기대가 크면 현실은 작아지고 만족은 멀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기대가 아니라 ‘기대하지 않음’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
투병을 마치고 난 지금 난 이 의미에 대해 조금은 더 알 것 같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올 거라 믿었다. 식사도, 체력도, 목소리도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몸은 여전히 낯설었고, 회복은 기대보다 느렸다. 그때 알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은 그만큼 더 깊어진다는 것을.그리고 실망은 내 안의 기운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한다.
기대는 본래 긍정의 언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속에는 결핍이라는 그림자가 숨어 있다.현재의 나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할 때, 사람은 미래의 나에게 기대를 건다.
이 다음엔 더 나아지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지금의 나를 부정한다. 그러나 삶은 늘 현재형으로만 존재한다. 아무리 내일을 상상해도 오늘이 무너지면 내일은 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삶은 정지할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버릴 수도 없다. 문제는 얼마나의 문제다.
과도한 기대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부족한 기대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결국 기대의 크기를 조절하는 일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과 같다.
생각해보면 기대에는 언제나 비교가 따라붙는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러나 그 비교는 결국 자신을 향한 실망으로 돌아온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며 초라함을 느끼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안도한다. 이 두 감정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둘 다 ‘타인의 삶’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비교는 결국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병실에 누워있던 시절, 나는 오랫동안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러나 정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기대치가 만드는 허상의 기준일 뿐이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그것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정상이다. 이 깨달음은 기대의 무게를 덜어내고 나를 평온하게 했다.
기대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배움의 길을 걷고 관계를 맺고, 삶을 확장해간다.
그러나 그것이 욕망으로 변질될 때 기대는 통제할 수 없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기대는 다루어야 할 에너지이지, 휘둘려야 할 감정이 아니다.
삶의 조건이 조금씩 좋아질수록 우리의 기대는 더 높아진다. 그 기대가 만족을 삼켜버릴 때 우리는 스스로 불행을 키운다. 불변의 법칙은 어쩌면 단순하다.
삶의 외적 조건이 아닌, 내적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무엇이 변하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만은 변하지 않게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불변의 가치다.
나는 이제 기대를 줄이는 대신 감사의 시간을 늘리려 한다.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 아침 공기를 마시며 눈을 뜬 것, 누군가와 웃으며 대화를 나눈 것, 이 작은 일들이 쌓여 나의 하루를 채운다.
차가운 공기가 여전히 방 안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 공기 속에는 새로움의 기운도 섞여 있었다. 변화는 늘 그렇게 찾아오고, 불변은 그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
삶의 온도는 그 둘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기대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낮추고, 조금은 지켜내며, 결국은 살아내는 것이다.
나는 오늘 ‘기대’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기대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믿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