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들려오는 가을바람소리가 캄캄한 새벽 어둠을 더 싸늘하게 느껴지듯 들려왔다. 불변의 진리가 담겨진 책을 꺼내어 펼쳤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아이러니의 경험은 나를 더욱 이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 그 문장들 속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혼돈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평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비극이 벌어질 가능성을,
비극의 결과를 과소평가하게 한다.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때 상황은 가장 위험해질 수 있다.”
불변의 법칙 중에서 - 173page
외면.
사실 이 문장 속에 오늘 내가 생각한 단어는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외면’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혼돈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평화란 무엇일까. 그것은 잘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불안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아닌 우리 개인이 이 상황을 진정으로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이 죽을 줄 알면서도 전쟁을 하고, 사기범죄를 저지르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을지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른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살이 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야식을 먹고, 운동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보면 인간은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올 위험을 알면서도 나만 아니면 또는 지금 이 순간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늘 그래왔다. 외면의 시작은 작고 사소한 무시로부터 비롯된다. 불편한 진실, 불안한 징후,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보았을 때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회피를 선택한다.
보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편함은 감정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평화로워 보이는 순간’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함을 희생시킨다.
이 평화는 그러나 진짜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균열을 감춘 벽처럼 언젠가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덮어놓은 상태다.
나는 지난 시간 몸의 이상 신호를 알면서도 ‘괜찮겠지’라며 외면했다. 통증을 느끼면서도 치료의 두려움을 핑계로 뒤로 미루었다. 결국 병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신호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듣지 않았다.
그 외면에 감춰진 내 몸속의 혼돈의 씨앗은 결국 나의 외면을 영양분으로 삼아 “암”이라는 커다란 검은 덩어리로 자라났다.
외면은 이렇게 조용히 삶을 잠식한다. 크게 울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섭다. 외면은 자기기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속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지금은 바쁘니까’, ‘언젠가 하게 될 거야’, ‘괜찮을 거야’라는 말들 속에는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려는 회피가 숨어 있다. 이런 자기기만이 쌓이면 우리는 결국 현실 감각을 잃는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닥친 위기 앞에서 “왜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났지?”라며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징후는 우리 앞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외면한 것이다.
외면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한 번 고개를 돌리면 다음에도 돌리는 것이 쉬워진다. 결국 외면은 인간의 가장 편안한 자세가 된다.
불편함을 외면하면 감정의 깊이가 사라지고, 진실을 외면하면 자신과의 관계마저도 희미해진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이제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기보다도 정직의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내 몸의 아픔과 내 마음의 불안을 인정하고 내 관계의 균열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을 지키는 첫 번째 실천이다.
나는 얼마전 ‘불안’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의 글을 쓰면서 불안은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는 과거의 기억”이라고 말했다.
아픈 과거의 기억 때문에 불안해지고, 결국 그 불안을 외면하게 되는 악순환 즉, 저자가 말하는 혼돈의 씨앗을 내포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불안은 결코 적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는 삶의 신호다. 우리가 외면하지 않고 그 신호를 마주볼 때 비로소 삶은 스스로 치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외면의 반대는 직시다. 직시란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다. 외면이 평화의 가장 큰 적이라면, 직시는 혼돈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나는 요즘 조금씩 그런 연습을 한다. 불편한 말을 들었을 때, 회피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작게라도 기록해 둔다.
외면을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다시 살아 움직인다.
불편함 속에서 변화의 씨앗이 자라고 직시 속에서 회복의 길이 열린다.
어쩌면 진짜 평화란 아무 일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편함을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를 잃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외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외면은 평화를 가장한 혼돈의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