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초겨울의 차가움이 잠시 물러난 새벽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람이 차가워 손끝이 시릴 정도였는데, 창문을 반쯤 열어 두어도 공기가 부드럽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빛이 방 안으로 번지고 그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선선한 가을’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날씨가 주는 작은 완화는 마음의 긴장까지 풀어주었다. 이번 주 책상 위에 올려둔 <불변의 법칙>을 꺼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작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이었다.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그때의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변화를 향한 집착보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오늘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은 이렇다.
“아무런 걱정도 고통도 스트레스도 없는 삶이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삶에는 동기부여도 발전도 없다.
역경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창의적 문제해결과 혁신의 가장 강력한 연료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고통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좋은 것들을 낳는 토대이며, 현재의 고통은 미래에 누릴 것들을 위한 기회의 씨앗이다.”
불변의 법칙 중에서 - 213page
기회.
우리가 흔히 기회를 말할 때 성공으로 가는 문, 성장의 계단, 운이 찾아오는 순간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기회는 그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통과 역경을 거쳐야만 피어나는 씨앗이라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보통 기회를 잡으려 달려가지만 때로는 고통 속에서 스스로 움트는 기회가 있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산다.
젊은 시절 나는 기회는 빨리 알아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이 원하는 속도를 따라가야만 문이 열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느린 속도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안다.
투병 이후의 시간은 그 사실을 내 몸으로 증명하게 만들었다. 병은 내게서 모든 걸 빼앗는 듯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되찾았다.
고통은 불행의 이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재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몸의 통증은 삶의 작은 균열들을 드러내 주었다.
당연했던 일상,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식사와 대화, 그리고 걷기라는 행위까지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불편함 속에서 나는 감사라는 감정을 다시 배웠고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기회라는 것을 조금씩 실감했다.기회는 종종 고통의 형태로 찾아온다. 그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멈추게 하며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불안과 멈춤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모든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은 고통을 피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 속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병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나는 지금 하루하루의 삶을 기회의 연장선으로 본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더라도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며 하루를 계획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기회다.
건강이 회복되는 과정은 느리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자신을 재정비한다. 예전에는 놓쳤던 사소한 것들이 지금은 마음을 채운다.
따뜻한 물 한잔, 창밖의 바람, 새벽의 고요함. 그런 순간들 안에 인생의 진짜 기회가 숨어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기회를 ‘찾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기회는 애써 찾는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준비된 마음이 그것을 알아볼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불행을 보고,
어떤 사람은 가능성을 본다.
그 차이는 운이 아니라 시선이다.
내가 병이라는 현실 속에서 절망만을 보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본 순간, 그 고통은 기회로 바뀌었다.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예측한 대로 끝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기회는 늘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중요한 건 그때의 태도다. 불운을 탓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힘, 그것이 인생을 바꾸는 진짜 능력이다.
이제 나는 기회를 성공의 문이 아니라 성찰의 거울로 본다. 그 안에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도, 놓아야 할 집착도 담겨 있다.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이 내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과정임을 안다. 불변이라는 단어가 진정 의미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형태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나는 오늘 ‘기회’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이 했다.
기회란 누군가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성공의 불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