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공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부드러워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베듯 스며들더니 오늘은 한결 온도가 내려앉았다.
기온의 변화가 이렇게 잦을 때면 몸도 마음도 어딘가 불안정해지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요 며칠 나는 그 반대로 오히려 불변의 의미를 더 깊이 느끼고 있다.
계절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진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사는 힘의 원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상 위에 놓인 <불변의 법칙>을 다시 펼쳤다. 며칠 전에도 읽었던 문장들이지만 오늘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최고의 재정 전략은 비관론자처럼 저축하고 낙관론자처럼 투자하는 것이다.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현재에서 그 미래로 가는 길에서 실패와 절망, 충격을 끊임없이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
이 둘의 조합은 역사 곳곳에서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목격된다.” 불변의 법칙 중에서 -244page
조합.
비관과 낙관, 과거와 미래, 두려움과 희망, 그 어떤 것도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문장 속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 조합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며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관은 우리로 하여금 대비하게 만들고 낙관은 우리를 전진하게 만든다. 둘 중 하나만 있다면 삶은 곧 불균형으로 기울 것이다.
항상 잘될 것이라 믿는 낙관만으로는 현실의 고통을 견디기 어렵고 늘 나쁠 것이라 생각하는 비관 속에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이 두 감정을 조합한다.
그런 이들은 현실의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낸다.
이 생각은 내 투병의 과정과도 닮아 있다. 병의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극도로 비관적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고 다시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믿었다.
그 절망 속에도 작게나마 희망의 조합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난 깨달았다. 의사의 말 한마디, 가족의 손길 하나, 새벽의 바람 한 줄기에도 다시 살아야겠다는 낙관이 섞여 있었다.
비관이 나를 현실로 붙잡아 두었다면
낙관은 나를 내일로 이끌었다.
그리고 두 감정이 함께 있었기에
나는 오늘 여전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조합이란 결국 균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삶은 언제나 이 두 축 사이에서 진자처럼 흔들린다. 한쪽으로 치우칠 때마다 우리는 중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 반복의 과정이 지루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 흔들림 속에야말로 살아 있음이 존재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거대한 조합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이 모든 감정이 적절히 섞일 때 비로소 인간다운 얼굴이 만들어진다.
나는 요즘 매일 10km를 걸으며 그 조합의 리듬을 느낀다. 어떤 날은 몸이 가볍고 어떤 날은 근육이 묵직하게 뻐근하다. 하지만 그 차이가 나를 지탱한다.
가벼운 날이 있기에 무거운 날의 의미를 알고 힘든 날이 있기에 회복의 기쁨을 느낀다. 삶의 리듬이란 결국 이런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합은 또한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성향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간다.
누군가는 나를 들뜨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차분하 만든다.
이들의 조합이 내 하루를 형성한다. 모두가 나와 같다면 세상은 금세 무너질 것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조화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조합의 과정이다.
문득 내가 읽었던 고전 속 인물들도 떠올랐다. 위대한 지도자나 철학자들 역시 한결같이 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스로를 단련하되 타인을 이해하고, 이상을 꿈꾸되 현실에 발을 디디는 것.
그 이중의 조화 속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불변의 철학을 세웠다. 결국 불변이란 변화와의 완벽한 조합에서 비롯된다. 삶의 모든 순간은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조합의 형태가 곧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 깨달아가고 있다.
어제의 두려움과 오늘의 용기, 그리고 내일의 희망이 함께 어우러져 지금의 나를 만든다.완벽하지 않은 조합이라도 그것이 진짜다. 불완전함이 섞여 있기에 더 단단하고, 흔들림이 있기에 더 유연하다.
오늘 아침 창밖을 보니 나뭇잎이 반쯤 떨어진 가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그 가지처럼, 나도 내 안의 조합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비관 속에서도 낙관을 잃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웃을 이유를 찾아내는 것, 그게 지금 내 삶의 방식이다.
나는 오늘 ‘조합’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조합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