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몰아친 때이른 한파가 잠시 주춤해진 새벽이었다. 그래도 10월 하순의 찬 바람이 창문을 스치며 서재의 온도를 서서히 낮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랜만에 어두운 새벽의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줄 것 같았다. 창가에 앉아 숨을 고르자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숨이 섞여 희미한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책상 위에는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한 권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 한 때는 이 책의 저자와 독자 모두가 그 안에서 내일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저자가 말한 ‘미래’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언어가 되었다. 페이지마다 담긴 예측과 비전은 더 이상 다가올 시간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오래된 예언들을 다시 읽는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미래였던 그 문장들이 오늘의 나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란 늘 현재 속에서 다시 쓰이는 과거의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던 중 내 시선을 단단히 붙잡은 문장이 있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선진국 카피’ 관성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 합니다.
잘 몰라도, 실패할 수 있어도,
도전해야 합니다.
이제 그런 도전만이 생존을 결정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유일한 길이니까요.”
AI사피엔스 중에서 - 408page
생존.
생존이라는 단어는 본래 본능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먹고, 숨쉬고, 싸우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서 생존은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이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 적응의 능력, 혹은 경제적 자립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단순한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을 뜻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나는 병실에서 처음 “살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문장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했다. 치료를 견디고 통증을 참으면 그것이 생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생존은 몸의 회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를 의미 있게 채우는 일 비록 작고 느리더라도 다시 나답게 살아가려는 의지. 그것이야말로 생존의 본질이었다.
매일의 운동과 독서, 짧은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한 정리하는 시간.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일이었다.
남에게는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생존의 의식이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기술은 인간의 속도를 앞서 달린다. AI가 글을 쓰고 기계가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생존은 더 이상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었다. 그 변화 앞에서 필요한 것은 ‘대응’이 아니라 ‘태도’였다.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배우는 마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지적인 생존의 방식이 아닐까.
나는 언젠가부터 생존을 ‘싸움’으로만 여겨왔다. 병과 싸우고 현실과 싸우고 나 자신과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생존은 싸움이 아니라
지속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와 속도가 느려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그 꾸준함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생존은 거창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긴 적도 없고 특별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하루를 버티고 다시 내일을 준비하며,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생존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있다. 숨이 이어지는 동안은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의미를 찾는 한 그 삶은 계속된다.
책 속의 문장이 말하듯, 이제는 ‘선진국을 따라가는’ 생존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생존이 필요하다.잘 몰라도, 실패할 수 있어도 도전하는 마음과 그 용기가 결국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생존은 진화의 기록이자,
변화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나의 생존은 매일의 루틴과 사유를 통해 조금씩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생존은 극단의 단어 같지만, 사실은 가장 온화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사실 안에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내 안의 생존을 확인한다.
다시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그리고 내일의 나를 위해.
나는 오늘 ‘생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생존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