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새벽 책상위에 놓여 진 책의 제목위에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전혀 다른 세상의 인류”라는 짧은 문장이 서늘한 서재의 기온과 함께 나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1년 전에 이 책을 읽을 때 만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시 읽으며 느끼는 것은 이미 늦어버린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픈 몸을 핑계로 대기에는 아프기 이전의 시간이 충분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더욱 더 이 새벽에 서재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술의 관점 즉, AI의 관점에서 보면 늦었다는 의미는 퇴색이 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에서는 오늘은 어제보다 늦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관점의 관념에 따라 글을 읽어 내려가며 오늘 내안에 들어온 문장은 다음과 같다.
“AI는 누구에게는 위기,
누구에게는 기회입니다.
양날의 검을 제대로 활용할 것이냐,
베일 것이냐는
우리의 준비 여하에 따라 달라집니다.”
AI 사피엔스 중에서 - 208page
위기.
이 단어는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성장과 변화는 늘 위기라는 이름의 문턱에서 시작되었다.
위기는 단지 나쁜 일이 아니라 익숙함의 껍질을 깨야만 하는 시점에 찾아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병실에서의 시간도 그랬다. 모든 감각이 무뎌지고 세상이 멀어진 듯한 그 순간, 그것은 분명 위기였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야 안다.
그 위기는 나에게 다시 삶의 방향을 가르쳐준 교사였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준 계기였다.
AI라는 기술도 다르지 않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지적 존재는 우리의 노동과 사유를 위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결국 위기란 사물이나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인간의 태도의 문제다.
나의 투병도, 나의 글쓰기 역시 그 중간 어딘가에서 시작되었다. 몸이 무너진 후 비로소 내면의 균형을 배우게 되었고 글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위기 앞에서 인간은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피하거나 맞선다. 피하면 고통은 잠시 멈추지만, 결국 또다시 같은 자리에 돌아온다.
맞서면 아프고 버겁지만 그 통증 끝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나는 이제야 그 단순한 진리를 이해한다. 위기가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맞서 끝까지 마주한 내가 나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위험만을 보는 이는 두려움 속에 머물고
기회를 보는 이는 행동으로 나아간다.
‘위기’라는 말 속에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들어 있다.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과 변화로 우리를 시험한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시대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다.
준비된 사람에게 AI는 도구가 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결국 인간의 가장 큰 경쟁력은 기술보다 마음의 근력 즉, 준비된 자세이다.
책상 앞에 앉아 잠시 책을 덮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의 변화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무기력인가.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 방치된 두려움이 스스로 만들어낸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위기를 무서워하지 않으려 한다. 위기에 맞설 수 있는 근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은 허물어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다.
잠시 찾아온 위기, 그것은 내 안의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이며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라는 삶의 경고음이니까.
결국 위기를 견딘 자만이 변화를 기회로 바꾼다.
나는 오늘 ‘위기’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위기는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성장으로 변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