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어두운 새벽. 창문이 굳게 닫혀 있음에도 틈새로 들어온 바람이 조금씩 서재의 온도를 내려놓았다. 손끝이 서늘해질 만큼 공기가 차가웠다. 그러나 이 차가움 속에서 생각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인류의 발전에도 변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해 고민을 했던 지난주와 달리 이번 주는 그와 반대로 가장 빠르게 변하는 ‘기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진 인간이 가장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가는 세상. 그 아이러니 자체가 이미 복잡한 현실의 축소판 같았다. 변화의 한 가운데서 방향을 찾던 내게 찾아온 오늘의 문장은 이랬다.


“MZ세대에 기성세대가 맞춰야 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나이든 세대가 맞춰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아닙니다.


새로운 표준 문명이 된 디지털 세계관에 이제는 모든 사람이 맞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걸 다른 말로 ‘MZ세대와 소통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AI사파엔스 중에서 - 159page


소통.

너무 익숙한 단어였지만 막상 그 의미를 깊이 떠올리면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사전을 펼쳐보았다.


소통이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 적혀 있었다. 즉, 생각이나 감정이 서로 잘 전달되어 오해 없이 이해되는 상태.


결국 소통은 한방향이 아닌 양방향으로 흐르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과연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진정한 양방향의 소통이었을까.


언젠가부터 우리는 소통을 ‘서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한 것이 막히지 않고 흘러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즉, 말이 잘 전달되면 그것이 곧 소통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success-6787855_1280.jpg?type=w1

하지만 말의 전달과 마음의 교류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전달은 속도를 중시하지만 소통은 방향을 필요로 한다. 내가 향하는 방향이 상대를 향하지 않는다면 그건 독백일 뿐이다.


기술의 발달은 이런 왜곡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손가락 하나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시대. 그러나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말에는 체온이 없다.


‘읽음 표시’는 생겼지만 ‘이해 표시’는 여전히 없다. 빠른 연결 속에서도 마음은 닿지 않는다. 관계의 폭은 넓어졌지만 깊이는 얕아졌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은 편리함을 얻는 대신 느림과 기다림의 미덕을 잃었다.

person-3265018_1280.jpg?type=w1

나는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이 단어의 진짜 의미를 다시 배웠다. 병실의 침묵 속에서 나눈 대화들은 놀라울 정도로 짧고 단순했다. “괜찮으세요?” 같은 몇 마디 물음. 하지만 그 말에는 정보가 아니라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내의 눈빛, 간호사의 손끝, 친구의 문자 한 줄. 모두가 다르게 생긴 소통의 형태였다. 말이 없어도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조금 알게 되었다.


진짜 소통은 전달이 아니라 수용이다. 내가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듣기 위해 내 생각을 내려놓을 때 시작된다.

social-media-5481633_1280.jpg?type=w1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기다림의 시간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마음을 여는 시간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말보다 침묵이 대답보다 시선이 더 많은 것을 전할 때가 있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할 때 수없이 “소통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 말 속에서 나는 늘 ‘설득’만을 생각했다. 상대의 의견을 듣기보다 내 논리를 강화했다.


그 결과는 늘 같았다. 오해와 피로, 그리고 거리감. 말이 많을수록 관계는 멀어졌다. 나중에야 알았다. ‘소통하자’는 말은 결국 ‘듣자’는 뜻이었다는 것을.


kids-7509860_1280.png?type=w1

기술은 지금도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이해다. 우리가 다시 느리게 듣는 법을 배운다면, 그때 기술은 비로소 사람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이다.


‘MZ세대와의 소통’이라는 말도 결국은 세대 간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 간의 이해의 문제다. 말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마음이 닿는 방식은 언제나 같다.


말은 순간을 지나가지만, 마음은 천천히 머문다. 서로의 생각이 부딪히지 않고 스며드는 그 순간, 이해는 비로소 자라난다.


그때 우리는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오늘 ‘소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소통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 스며드는 것이다.





이전 06화‘도전’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