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늦가을의 새벽은 유난히 고요했다. 며칠째 오락가락하는 추위로 서재 창문 밖으로 희미한 서리가 내려 앉았다.


손끝이 시릴 만큼의 냉기를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 위해 다시 책을 펼쳤다.


붉은 색 밑줄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발견한 한 문장이 시선을 붙잡았다.


“퇴직 후 나 자신에게는 어떤 투자를 할까? 이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자산’으로 여겨라. 그리고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스스로를 그동안 벌어둔 자산을 깎아 먹는 ‘비용’으로 여기는 순간,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뉴업의 발견 중에서 - 254page


투자.

사실 요즘 ‘투자’라는 단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들린다. 새로운 정권은 ‘주가 5,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고, 뉴스는 연일 그 숫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로 어제 코스피 지수는 4,200선을 넘어섰다. 주식시장에는 활기가 넘치고, 거리의 대화 속에도 종목과 차트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마치 주식투자를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는 분위기다.


‘11만 삼성’, ‘60만 하이닉스’라는 단어가 회자될 때마다 나는 그저 스크린 속 숫자만 바라보며 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경제 뉴스에서는 투자 전문가들의 말이 넘쳐나고, 누구나 재테크에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그 열기 속에서 나는 문득 ‘투자’라는 단어가 너무 협소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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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만을 좇는 투자,

단기 수익만을 기대하는 투자 속에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한 투자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그동안 나는 투자라는 단어를 늘 경제의 언어 즉, 자산을 불려 수익을 내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단어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다.


퇴직 후의 삶을 단순히 소비의 시간으로 바라보던 내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 나 자신이 자산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의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퇴직이라는 단어에는 보통 끝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일터를 떠나고, 역할을 내려놓으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각인 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였다. 스스로를 더 이상 유용한 존재로 여기지 않게 되는 순간, 사람은 급격히 무너진다.


자산이었던 자신을 비용으로 여기면 살아가는 모든 일이 지출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자신에게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남은 시간 속에서도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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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숫자가 아닌 의미의 이익이다.


병을 겪은 후 나는 이 투자의 의미를 몸으로 배웠다. 회복이라는 과정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에 다시 시간을 들이는 일이었다.


식사 한끼, 운동 한 번, 수면의 질까지 모두가 투자였다. 하루의 산책 또는 자전거를 타는 것은 체력을 쌓기 위함이었지만, 더 깊은 의미에서는 내 삶을 다시 세우는 행위이다.


병을 겪으며 잃은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있었다. 예전에는 외부의 성취와 평가에 투자했다면 지금은 내 안의 균형과 회복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퇴직 후의 시간을 소비로 채우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을 배움과 관계, 경험으로 채운다. 언뜻 보기에 소소해 보이는 차이가 인생의 후반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


지금의 내가 하루를 기록하고, 새로운 책을 읽고, 낯선 생각을 글로 남기는 일들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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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소 느낀 것은,

진정한 투자는 ‘지속성’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성공적인 투자다.


책의 문장은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스스로를 비용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처음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병 이후의 나는 느려졌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줄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나를 관리하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투자였다.


시간을 들여 자신을 이해하고,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나아가는 태도. 그것이 지금의 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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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라는 단어에는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야 한다.


나에게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내 안의 가능성을 믿는 일이다.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시간을 아끼는 일. 언젠가 지금의 선택들이 모여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산의 수익처럼 숫자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존재의 깊이로 증명될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안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매일 조금씩 쓰는 글, 꾸준히 타는 자전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들.


이 모든 것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투자’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단어다. 남은 시간을 낭비로 채우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여전히 살아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신호다.


나는 오늘 ‘투자’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투자는 이익이 아니라,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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