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공기가 다시 완연한 늦가을을 연상하게 하는 체감 온도로 다가오는 아침이었다. 어제보다 한결 선선해진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베란다 너머 동편 아파트 끝에서 떠오르는 붉은 노을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에 은은한 붉은 빛을 드리웠다. 창문 사이로 그 빛을 바라보며 짧은 명상을 했다.


계절이 바뀌어가는 순간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기운이 내 마음의 온도를 정리해주는 듯한 이 시간이 이제는 내게 중요한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의 책은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이었다. 작년 7월, 퇴사를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던 시절 우연히 유투브 강연을 통해 알게 되어 읽었던 책이었다.


다시 펼친 첫 장에는 그때의 내가 남긴 짧은 메모가 있었다. 붉은 글씨로 또렷하게 적힌 문장.

KakaoTalk_20251105_083921999.jpg?type=w1

“새로운 시작에 대한 나의 목표가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끈기를 찾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 문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퇴사를 결심하고 사실 나는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27년 동안의 직장생활은 내 인생의 전부였고,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건 익숙했던 안전지대를 떠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용기라 했지만, 정작 내 마음은 불안했다.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나는 글쓰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단어가 바로 ‘그릿’이었다.


‘그릿’은 저자인 앤절라 더크워스가 직접 만든 단어로, ‘열정’과 ‘끈기’가 결합된 개념이다.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끈기라는 것. 노력과 지속의 힘이야말로 재능을 뛰어넘는 인간의 진짜 잠재력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다 눈에 들어온 문장은 저자가 인용한 니체의 말이었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와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릿 중에서 - 068pgae



재능.

재능’이라는 단어에 내가 얼마나 많은 변명을 숨겨왔는지 떠올랐다. 나는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도전을 미루었다.


타고난 감각이 없다는 이유로 ‘안 되는 일’이라고 결론 내리곤 했다. 하지만 그건 두려움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였고 실패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한 방어막이었다.


퇴사 후의 삶은 그 생각을 완전히 바꾸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처음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습관이 아니라 싸움이었다.


단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한 날이 많았고,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을 반복하며 자책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 반복 속에서 문장 하나가 만들어지고, 글 한 편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글쓰기 또한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끈기의 영역이라는 것을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체력을 요구하는 육체적 행위였다.

%EB%A9%98%ED%83%88%EC%9D%98%EC%97%B0%EA%B8%88%EC%88%A0_(24).png?type=w1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세로 앉아, 고통스럽게 생각을 끌어내야 한다.


때로는 단어 하나를 찾지 못해 하루를 허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시간이 쌓이면 어제보다 조금은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릿’이란 바로 이런 시간을 견디는 힘이었다.


재능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재능은 어쩌면 불꽃 같기도 하다. 반짝이지만 금세 꺼진다. 한편 끈기는 불씨 같다. 보이지 않아도 오래 간다.

new-years-eve-1283521_1280.jpg?type=w1

불꽃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불씨는 자신을 태워 빛을 낸다.


재능은 시작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끝까지 가게 만드는 건 언제나 끈기다.


내 투병 생활 또한 같은 원리였다. 병과 싸운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섰다.


치료를 받던 날들, 입안이 헐어 물조차 넘기기 어려웠던 순간, 체력이 바닥나 한 걸음조차 내딛기 힘들던 날들에도 나는 책을 펼치고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내 안에 남은 ‘불씨’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 반복은 내 생의 가장 큰 끈기였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결심이자, 불확실한 내일을 향한 믿음이다.

new-year-5291766_1280.jpg?type=w1

이 믿음은 재능이 아니라 선택이다.


어떤 날에는 성공이 보이지 않아도, 어떤 날에는 모든 게 헛수고처럼 느껴져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재능이다.


니체는 또 말했다. “선천적 재능으로 신화화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경쟁에서 면제받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상황에 안주하게 된다.” 라고.


그렇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천재가 아니라, 꾸준함을 통해 진화하는 존재다.


결국 ‘재능 있는 사람’과 ‘보통의 사람’을 나누는 것은 타고난 차이가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의지의 차이일 뿐이다.


오늘도 나는 내 작은 루틴을 반복한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운동으로 하루의 리듬을 만든다.

campfire-8084064_1280.jpg?type=w1

그것이 곧 내 그릿의 증거다.


삶은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변하지 않는다. 대신 작고 꾸준한 선택들이 쌓여 어느새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


늦가을의 아침 공기가 다시 서재를 스친다. 창문 밖 붉은 노을이 점점 사라지고, 하늘은 서서히 초겨울의 색을 닮아간다.


그러나 내 안의 불씨는 여전히 따뜻하다.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다시 문장을 쓴다.


나는 ‘재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전 12화‘투자’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