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늦가을의 새벽은 언제나 차가웠다. 하지만 오늘은 어젯밤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둥글게 떠오른 슈퍼문의 잔빛이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는 듯 했다.


창문을 열자 싸늘한 바람보다 먼저 느껴진 건 달빛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공기에 이끌려 잠시 창문을 열고 새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편에서 떠오르는 해로 인해 이제는 희미하게 남은 달빛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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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오랜만에 만난 옛 직장 후배와의 대화는 단순한 근황 나눔 이상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수년간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각자의 싸움을 치러낸 전우였다.


시간이 지나 각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결국 다시 우리를 같은 전선 위로 불러냈다. 직장은 여전히 전쟁터였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 전쟁터를 떠나 지금은 또 다른 싸움을 치르고 있다. 이번엔 몸의 전쟁이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회사의 회의실보다 길었고, 진료실의 말 한마디는 상사의 평가보다 더 무거웠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버틴다’는 말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다만 이번엔 패배가 아니라 잠시 후퇴일 뿐이라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반복해 주었다.


다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 그 시간을 지탱해주기 위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단어가 바로 ‘그릿’이었다.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왜냐하면… 이라는 답변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목표의 위계에서 최상위 목표에 이르게 된다.


최상위 목표는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다.”

그릿 중에서 - 95page


수단.

우리는 흔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이든 용인된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함정이 숨어 있다.


수단이란 단어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목적보다 앞서버릴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잊게 된다.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수단으로 채워져 있었다. 공부는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고, 일은 더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심지어 건강조차도 더 오래 일하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수단이었다. 그렇게 살아오며 어느새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나의 모든 행동은 목적을 향한 수단이었지만, 정작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퇴사 후 처음 맞이한 일상은 낯설만큼 조용했다.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도, 촉박한 마감도, 상사의 지시도 없는 하루.


처음엔 허전했지만, 곧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내가 너무 오래 외면해왔던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일했는지, 왜 그렇게 애를 쓰며 달렸는지, 왜 쉬는 법을 몰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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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왜’의 끝에는 결국 ‘수단’이 있었다.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수단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투병을 하며 병실에서 나는 수단과 목적의 자리를 바꾸어 보기 시작했다. 이제 운동은 단순히 회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일으키는 목적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일도 단순히 시간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목적이 되었고, 사람을 만나는 일 역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목적이 되었다.


책을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니 그릿은 단순히 ‘끈기와 열정의 조합’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릿은 수단을 넘어 목적을 회복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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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잣대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정한 이유로 하루를 견디는 힘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단단해진다.


후배와의 대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 요즘은 뭐가 제일 부럽냐고 하면요, 저는 꾸준히 뭘 하고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꾸준함은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태도다.


그릿을 가진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목표를 바꾸지 않아서가 아니라, ‘왜’라는 이유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병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 몸의 자유, 일상의 속도, 직장의 자리. 하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있다.


바로 이유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다시 일어서야 하는지, 왜 오늘을 써 내려가야 하는지. 그것이 지금의 내 궁극적 관심이자 목적이다.


어젯밤의 슈퍼문은 마치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구름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그 빛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스했다.


어쩌면 그 빛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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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단으로 살지 말라고.

목적을 잊지 말라고.

그리고 이유를 놓치지 말라고.


새벽의 공기는 여전히 차지만, 오늘 내 마음은 조금 따뜻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새벽 공기를 느끼며, 희미한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나는 내게 묻는다.

“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대답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이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수단’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목적이 사라진 수단은 방향을 잃은 노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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