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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겨울의 초입에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는 강력한 한파가 몰려든 새벽이었다. 새벽 공기는 이상할 만큼 나를 더 정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직 남아있는 감기기운에 떨어진 체온을 따뜻한 차 한잔으로 데우고 책상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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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차가움이 찾아올 때면 나는 오히려 마음이 또렷해진다. 이 시간만큼은 어떤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살아갈 삶에 대한 중간지점에서 두 갈래 길 앞에서 선 나의 선택이 후회하지 않을 곳, 아니 덜 후회할 곳으로 가기 위한 도움을 위해 한 권의 책을 다시 펼친다.


삶의 두 갈래길 앞에 서면 누구나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려 하지만 실은 어떤 길도 완벽하게 옳거나 그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다만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의 한 문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길로 가는 길목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대상의 크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인격의 크기를 성장시키는 것이

비판적 독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적 독서를 할 때,

비판적으로 바라볼 대상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어나더레벨 중에서 - 165page



비판.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옳고 그름, 좋고 나쁨, 타당성과 문제점 등을 분별하여 판단하는 일.

사물이나 의견을 분석하고 평가해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행위.


오늘 비판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적기 위해 비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동안 비판이라는 단어에 대해 난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판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이라는 점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분석과 판단을 ‘공격’과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누군가를 공개 비판한다는 것은 잘못을 까발려서 그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전적 정의에서 보듯 비판의 의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판단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의 결론을 그름을 부각시키고 옳음은 묻어버린다.


결국 누군가를 비판한다는 것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그를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을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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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다.


난 지난 9월 비난이라는 단어에 대한 글을 적었다.

당시 나의 결론은 “비난은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마음을 닫게 하는 힘이다.”라고 했다.


‘비난’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 네이버 블로그


그 말은 지금 다시 읽어도 변함이 없다.

비난은 누군가의 행동을 교정하지 못하고 마음만 얼어붙게 만든다. 상처만 남기고 변화는 남기지 못하며 고립을 만들고 연결을 끊어버린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비판은 없고 비난만 있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비난만 가득한 세상은 나와 타인의 마음을 닫게 하고 상처만 남긴다.


그렇다면 올바른 비판은 어떤 것일까? 책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비판적 독서의 의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판의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바로 반성과 성찰이다. 잘못된 점을 줄지어 늘어놓고 지적한 뒤에 속이 후련하듯 뒤로 돌아서는 것은 비판적 행위가 아니다.


그저 감정을 쏟아내고 돌아서는 것에 불과하다. 그 자리에 분석도 없고, 변화도 없고, 책임도 없다. 비판은 감정에 기반한 폭발이 아닌 지식에 기반한 분석이 필요한 행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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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누군가를 낮추는 일도 아니고,

정답을 들이대는 일도 아니다.


나는 투병의 시간 동안 내 몸이 내게 보내는 조용한 비판을 매일 들었다. 몸의 통증은 나에게 무리하지 말라는 비판이었고 떨어진 면역력은 내 지난 삶의 생활습관에 대한 비판이었다.


회복의 과정에서 나는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나를 주저앉히게 만든 것은 비난이었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던 것은 비판이었으며, 과거를 후회하게 만들었던 것은 비난이었고, 미래의 방향을 찾게 도와준 것은 비판이었다.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판할 때 비로소 조금씩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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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는 용기.

그 부분을 고치기 위해 기꺼이 멈춰 서는 시간.


그 멈춤이 나를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나는 회복의 매 순간마다 느꼈다.


비판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정말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지 않는 태도’다.


비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 두려움의 근원이다.


오늘 새벽 한파 속에서 나는 비판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웠다.

비판은 타인을 향하는 칼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조용한 거울이라는 사실을.


그 거울 앞에서 나는 더 정직해지고 싶다.


나는 오늘 ‘비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비판은 상처를 내기 위한 칼이 아니라, 삶을 더 나아가게 가꾸는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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