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공기는 아직 어둠을 완전히 놓아주지 않은 상태였다. 창밖은 고요했고 방 안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낮게 울렸다.
몸은 여전히 느렸고 회복이라는 단어는 아직 진행형이었지만 이 시간만큼은 누구의 요구도 닿지 않는 나만의 영역이었다.
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의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책과 함께 여는 새벽의 어둠속에서 자유라는 문장이 포함된 단어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중에서 - 108page
자유.
1. 구속이나 억압을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
2. 법률, 규범, 제도 등의 제한이 없는 상태
3. 철학적으로 자기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나 상태
지난 8개월간 글을 쓰면서 자유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자유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깊은 의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만한 지식적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유에 대해 논할 정도로 나의 지식이 철학과 문학의 경지에 올라왔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이 부족하며 어리석은 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의미를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자유에 대한 글을 쓰려는 용기를 가진 것은 자유라는 단어속에 내포하고 있는 거대하고 수많은 의미 중에 아주 작은 하나에 대한 생각을 위해서다.
자유의 정의를 논하기 보다는 내가 선택해왔던 아주 작은 자유들을 돌아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에 대해 이론이나 이상적인 그 무언가 보다 몸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투병 이후의 일이었다.
병 앞에 섰을 때 나는 자유롭지 않았다. 시간은 병원 일정에 맞춰 움직였고 몸은 치료 계획에 따라 반응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고, 가고 싶은 곳을 즉흥적으로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자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상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환경은 분명 내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태도만큼은 여전히 내 몫이라는 사실이었다.
치료를 원망할지 받아들일지, 오늘 하루를 무기력으로 보낼지 기록으로 남길지는 내가 정할 수 있었다.
투병 생활은 나에게 자유를 박탈한 시간이 아니라, 자유의 크기를 재정의한 시간이었다.
이전의 나는 자유를 움직임의 폭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지가 자유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자유라 부른다.
아플 때도 나는 자유의 의지로 선택했다. 오늘의 고통을 기록으로 남길 것인지, 침묵으로 넘길 것인지 이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 힘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자유는 늘 극적인 순간에 등장하지 않았다. 회사에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했을 때도, 글을 계속 쓸지 포기할지를 고민했을 때도 자유는 늘 조용히 질문을 건넸다.
지금 이 선택이 남의 기대인지, 나의 방향인지 묻는 질문이었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부담으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투병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 자유로운 나의 선택이 바로
내 삶이 된다는 뜻이라는 것을.
요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자유라는 말이 자주 공허하게 느껴진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살고 있지만, 정작 개인의 선택은 점점 줄어든다.
성과와 효율, 비교와 기준이 삶의 방향을 대신 결정해준다.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이 선택을 강요한다.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잃어버린 사회다. 쉬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고, 멈추는 선택은 설명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아프면 회복보다 복귀를 먼저 묻고, 흔들리면 버티는 법부터 가르친다. 이 구조 속에서 자유는 선언으로만 존재한다.
이 문제의 해결은 거창한 제도 변화만으로는 어렵다. 나는 오히려 개인의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선택을 다 가질 수는 없어도,
무엇을 거부할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거부의 선택이 자유의 회복이라고 믿는다.
투병 이후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동시에 하나를 분명히 얻었다. 내 삶의 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걷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뒤처진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이라는 인식의 감각은 지금도 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자유다.
자유는 결국 거창한 권리가 아니라 일상의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불안을 어떻게 대할지, 나에게 친절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가장 취약한 순간에 오히려 또렷해진다. 나는 병을 통해 그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오늘 나는 자유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나는 ‘자유’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자유의 기준은 얼마나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향할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