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아직 어둠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새벽이었다. 창밖의 공기는 차갑고 고요했다. 몸은 천천히 깨어났고 요즘은 생각이 몸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늘 그렇듯 이 시간은 문장 속의 단어를 통해 하루의 사유를 점검하는 시간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까지 가능한지를 가늠하게 된다.


유시민작가와 독자들의 질문과 답을 통해 공감을 이루는 부분을 읽으며 오늘 내게 다가온 문장은 이것이었다.

“주체 역량을 과대평가할 경우, 주관적 의도와 달리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으면서 뜻하지 않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 <중략>…

꼭 하고 싶거나 해야만 한다고 믿는 일을 내가 처한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을 고려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선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이것이 제 인생론입니다.”

공감필법 중에서 - 101page



조건.

1. 어떤 일이 성립하거나 이루어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나 상태.

2. 상황을 구성하는 외적, 내적, 요서의 집합


조건은 마음보다 먼저 현실을 묻는다.


지금의 체력은 어떤 지, 시간은 충분한 지, 환경은 나를 돕는지 방해하는지 조건은 늘 구체적이고 계산적이다.


우리는 흔히 의지를 과대평가하며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으면 버틸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건이 받쳐주지 않는 의지는 종종 무모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 달았다.


나는 한동안 그런 무모함을 성실함으로 착각하며 조금 아파도 괜찮다고 말했고 조금 무리해도 지금만 넘기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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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삶을

용기라고 불렀던 것이다.


결과는 분명했다. 몸이 먼저 멈췄고 일상이 무너졌으며 내가 감당하지 못한 고통은 주변의 몫이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조건을 무시한 선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조건을 고려한다는 것은 포기와는 다르다. 그것은 나를 정확히 아는 일에 가까우며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범위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조건을 살핀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 따라오는 죄책감, 뒤쳐진 것 같다는 불안, 나만 멈춘 것 같다는 초조함의 감정들이 조건을 외면하게 만든다.


특히 요즘의 현실에서는 이 감정이 더 강해진다. 조건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조건은 어떤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였다. 지금의 상태를 점검하고 무리하지 않기 위해 살피는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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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조건은

이유가 아니라 명분이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따지는 기준이 아니라, 이미 결과를 먼저 요구한 뒤 그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해냈는가를 먼저 묻고 그다음에 왜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를 ‘~~때문에’ 라는 조건으로 설명한다.


이제 조건은 과정의 일부가 아닌 도달 이후에 제출해야 하는 증빙에 가깝다. 얼마나 준비되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성취했는지가 먼저 놓인다.


그래서 조건은 점점 앞이 아니라 뒤에 붙는다. 시작 전에 점검하는 장치가 되어야 하는데, 결과를 통과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통행증이 되어 버렸다.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이제는 조건을 갖췄음을 증명해야만 인정받는 구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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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 속에서 조건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기준으로 변질된다.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이미 요구된 결과 앞에서 조건은 의미를 잃는다.


조건이 결과를 따라가게 되면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숨기게 된다. 아직 부족하다는 말 대신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말한다.


아직 회복 중이라는 말 대신 이미 가능한 것처럼 행동하고 결국 조건은 자기기만의 언어가 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조건이라는 단어가 가장 잔인해진다고 느낀다.


조건이 현실을 고려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성과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가 될 때 사람은 자신을 보호할 기회를 잃는다.


조건을 이유로 삼는 사회는 겉보기에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합리성은 언제나 결과를 중심에 둠으로 과정에서 무너지는 개인의 상태는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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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개인의 관리 실패로 분리될 뿐이다.


특히 아픈 시간을 지나온 뒤에는 더 그렇다. 조금만 쉬어도 도망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만 속도를 늦춰도 게을러진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다시 무리하려 한다.


조건을 무시한 선택은 결국 회복의 시간을 더 길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번 무너진 조건은 회복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나는 지금의 선택이 내일의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조건을 고려한 삶은 의외로 단순하다. 무엇을 더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고 가능한 선택지 중에서 가장 안전한 길을 고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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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길을 꾸준히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태도는 나를 비겁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더 많은 날을 일상 속에 머물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다.


조건을 인정하는 삶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일이다.


지금의 상태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일이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믿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조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조건이란 결과 뒤에 붙는 설명이 아니라, 시작 앞에 놓여야 할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