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이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자 겨울 첫자락의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는 이 시간의 공기는 늘 그렇듯 생각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새해의 첫 생각을 적는 시간이었다. 달력이 바뀌었을 뿐인데도 마음은 괜히 한 해의 방향을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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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앞에 잠시 서서 책의 제목들을 바라봤다. 새로움을 찾고 있었지만 동시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올해의 첫 다시 읽는 책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다시 읽어도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문장이었으면 했다.


여러 번 손이 갔던 책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멈춘 한 권이 있었다. 변한 것 없는 새해에 여전히 나를 붙잡는 문장이 담긴 책이었다.


그렇게 다시 꺼내 든 책이 유시민 작가의 <공감필법>이었다. 이 책은 매번 다짐을 새로 하게 만든다.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보다 먼저 어떻게 읽히고 어떻게 닿을 것인가를 묻게 만든다.


새해의 시작으로 이보다 더 솔직한 질문을 건네는 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라는 느낌 때문인지 유난히 고요했고 그 고요 속에서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책을 쓴 사람과 읽는 나 사이에,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읽는 독자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을 만들어 공감을 주고받을 때

저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공감필법 중에서 - 34page





공감.

1.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함게 느끼거나 이해함.

2. 어떤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 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가짐.


공감의 사전적 의미의 설명은 짧지만 이 단어가 머무는 자리는 결코 얕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공감은 감정의 기술이기 이전에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서둘러 판단하지 않으며 쉽게 끊어버리지 않겠다는 선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공감을 경험할 때가 있다. 저자가 겪었을 시간과 감정이 활자를 건너 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지만 그 문장을 통해 잠시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 생기는 감정은 동의와는 다르다.


꼭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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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생각의 일치가 아니라

감정의 연결이라는 말이 더 정확해 보인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독서를 넘어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공감은 개인의 감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결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된다.


지금 우리 사회, 즉 대한민국이야말로 이 공감의 능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은 넘쳐나지만 듣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각자의 입장은 또렷해졌지만 서로의 사정에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판단이 앞서고, 공감이 빠진 자리에는 속도와 확신만 남는다.


이럴 때 공감은 감상적인 미덕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능력이 된다. 설득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힘, 반박하기 전에 왜 그런 말에 이르렀는지를 묻는 태도.


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더 정교한 주장이나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이 기본적인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다시 글로 돌아온다. 내가 글을 쓰며 공감을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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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을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여전히 붙들고 있다.


글을 쓰며 공감을 떠올리면 조금 다른 감정이 생긴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문장을 읽는 몇 초 동안만큼은 혼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글은 늘 조심스럽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보다 다치게 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공감은 어쩌면 배려와 닮아 있다.


공감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감정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실천이 따라온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 말을 끊지 않는 일, 당장 답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공감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작은 행동의 반복이다.


나는 점점 그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예전보다 말을 덜 하고 대신 조금 더 오래 듣게 되었다. 그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하다.


살다 보면 공감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순간도 있다. 어차피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 때다.


그럴 때 마음은 쉽게 닫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감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바로 그때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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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감정을 내가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누구의 공감도 닿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공감을 관계의 기술로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로 옮겨두려 한다.


오늘의 감정을 오늘 안에 밀어내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나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역시 공감의 한 형태

라고 믿는다.


공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책과 나 사이에서, 글과 독자 사이에서 그리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사이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가느다란 선처럼.


나는 ‘공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공감은 타인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자리에 잠시 앉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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