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눈이 내렸지만 겨울의 기세는 이미 한풀 꺾인 듯했고 그 자리에 봄의 기운이 아주 미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딘가 부드러웠다.
어제 쌓인 눈의 흔적은 사라졌고 내려앉는 빛은 예전보다 한층 옅고 따뜻했다. 그 미묘한 변화는 새벽의 시작에도 어김없이 번지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자리인 베란다에 서 있었지만, 동편 저쪽에서 서서히 밀려오는 해의 기운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이렇듯 계절은 누구의 허락도 없이, 누구의 조급함에도 휘둘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리듬으로 오고 있었다.
심리상담을 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따뜻한 차 한잔을 하며 몸을 데우고 책장을 펼쳤다. 그리고 작년 내가 적었던 짧은 메모와 함께 만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조화를 이뤄간다는 것은 상황 속에서 나를 조율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릇에 따라 물의 모양이, 태양의 상태에 따라 바다의 색깔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릇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태양의 상태와 바다의 색깔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혹시 모른 내마음 중에서 - 231page
조화.
1.서로 어울려 균형을 이룸.
2. 서로 다른 성질이나 요소가 잘 어울리도록 맞춤.
조화는 비슷한 것끼리 모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들이 함께 서 있는 장면이다.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를 지우지 않은 채 나란히 서 있는 상태.
우리는 종종 조화를 오해한다. 나를 줄이고 상대에 맞추는 일로 생각한다. 모난 부분을 깎아내고 튀는 색을 감추는 일로 이해한다.
그러나 진짜 조화는 소멸이 아니다. 물이 그릇의 모양을 따르듯 보이지만 물은 여전히 물이다. 바다가 태양의 빛에 따라 색을 달리해도 바다는 바다다. 그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요즘 이 단어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
성향이 다른 사람들.
속도가 다른 사람들.
우리는 그 다름을 쉽게 충돌로 받아들인다.
물과 불은 섞일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물과 불이 같은 그릇 안에 공존할 수는 없을지라도,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며 하나의 질서를 만들 수는 있다. 그것이 조화일지도 모른다.
조화는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정확히 아는 일이다. 내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알고, 상대가 어떤 결을 가졌는지 인정하는 태도. 그 위에서 간격을 조절하는 일.
나는 그 조율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음악에서 조율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악기도 소음을 낸다. 그러나 각자의 음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높낮이를 맞추면 하나의 곡이 된다.
작년의 이 책을 읽었을 당시 그때의 나 역시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있었을 것이다. 조화라는 단어를 붙들며 숨을 고르고 싶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완전히 조화롭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몸과 마음의 조화를 배웠다. 몸은 느려졌는데 마음은 예전의 속도를 고집하면 갈등이 생긴다.
마음은 쉬고 싶은데 몸이 억지로 움직이면 균열이 생긴다. 어느 한쪽을 몰아붙이면 전체가 흔들린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조화는 타인과의 문제이기 전에
나 자신과의 문제라는 것을.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나뉜다.
찬성과 반대. 옳음과 그름. 흑과 백.
요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조화가 왜 필요한지보다,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질을 인정하기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설명하기보다 구분하려 한다.
생각이 다르면 틀린 것이 되고, 속도가 다르면 뒤처진 것이 되며, 방식이 다르면 위험한 것이 된다.
조화는 느린 과정인데 우리는 속도를 중시하고, 조율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결론을 서두른다. 그 사이에서 서로의 다름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충돌의 원인이 된다.
어쩌면 조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다름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자리가 줄어들까 봐,
나의 생각이 밀려날까 봐,
나의 확신이 흔들릴까 봐
우리는 상대를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조화는 나를 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서로의 성질을 인정함으로 나의 성질도 또렷해진다.
함께 있음으로 인해 각자의 빛이 더 분명해지는 것이 조화이며, 그 과정에서 다른 성질이 함께 서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금세 고립된다.
조화는 타협이 아니라 공존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흡수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는 방식말이다.
문득 조화롭다는 의미를 우리가 아름답다는 의미로 느끼는 이유를 생각한다. 전혀 다른 것들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옆에 서 있어도 괜찮다는 태도와 나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색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조화를 더 빛나게 한다.
새벽이 밝아오는 붉은 하늘 아래 회색 건물들이 서 있고, 그 위로 옅은 흰색 구름이 몰려있다.
흰색과 회색 그리고 붉은색 빛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있다.
태양은 인간의 만들어낸 구조물을 밀어내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환경 그대로 상대의 존재를 빛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만 그렇게 공존한다.
오늘 하루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부딪힐 때 조금은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 내 성질을 지키면서도 상대의 성질을 인정할 수 있을지 완벽한 균형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함께 설 수 있는 간격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조화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다. 작은 태도에서 시작된다. 말을 한 박자 늦추는 일.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일. 다름을 위협으로만 보지 않는 일. 그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나는 ‘조화’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조화는 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알고 타인을 인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