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 여섯시. 아직 어둠이 베란다 창틀에 얇게 남아 있다. 겨울이 완전히 물러나지 못한 공기속에 유리창에는 강한 빗줄기가 묻어있었다.


겨울비가 창문에 닿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서늘함이 느껴지는 애매한 새벽의 밝기였다.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을 데우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장에 늘어선 책들 중 눈에 들어오는 한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작년 블벗의 선물로 내게 온 모리사와 아키오의 <수요일의 편지>를 다시 펼친다. 잔잔한 커피 향이 방 안을 채운다.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고요는 언제나 나를 솔직하게 만든다.

“내 인생은 이 초침으로 1초씩 깎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무자비할 정도로 정확하게.


페이지를 넘겨서 과거로 돌아가도 오로지 같은 독이 적혀있을 뿐인 나의일기.


그렇다면 그다음도 나는 같은 일기를 계속 써 나가게 되는 걸까? 같은 독투성이의 날들을 보내는 걸까?”


수요일의 편지 중에서 - 54page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소모’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오늘을 살아냈다는 안도감 속에 이미 줄어든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자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우리는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시간은 우리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모라는 단어는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다 써버렸다거나 더는 남지 않았다는 허전함 같은 그러나 나는 그 의미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소모란 단지 줄어드는 상태가 아니라, 나를 어디에 쓰고 있는지 드러내는 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어떤 감정에 나를 내어주고 있는지에 따라 소모의 질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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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다른 하루를 산다고 믿어왔지만,

돌아보면 비슷한 걱정과 비슷한 후회가

반복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심과 다짐이 쌓이는 대신, 익숙한 불안과 미루기가 되풀이될 때 스스로를 조금씩 닳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반복이야말로 무의식적인 소모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소모를 몸으로 경험했다. 체력이 떨어지고, 이전보다 쉽게 지치고, 하루의 끝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병원의 긴 복도를 걸으며 형광등 아래에서 나는 시간이 나를 앞질러 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그것이 단지 잃어버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나를 비워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불필요한 조급함과 과시적인 목표, 타인의 시선에 기대어 세운 기준들이 그 시간 속에서 조용히 힘을 잃어갔다.


그런면에서 보면 소모는 때로 정리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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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붙들기 위해 애쓰던 힘이 빠지면서,

오히려 본질이 또렷해지는 경험을

나는 그 시기에 했다.


몸이 줄어드는 동안 욕심도 줄어들었고,

일정이 비워지는 동안 생각은 깊어졌다.


닳아가는 감각이 두려움으로만 남지 않았던 이유는, 그 닳음 속에서 남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의 초침은 여전히 정확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1초씩을 깎아낸다. 그 사실은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담담하다.


나는 이제 소모를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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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비교에 나를 쓰고 있지 않은가?

의미 없는 걱정에 나를 흩어지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한 문장을 붙들고 사유를 확장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는가.


글을 쓰는 일 또한 분명 소모다. 생각을 끌어올리고, 표현을 다듬고, 때로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직면해야 한다.


그 과정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 소모를 통해 더 또렷해진다.


쓰는 동안 나의 생각은 정리되고, 흩어져 있던 감정은 자리를 찾는다. 그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방향을 가진 소모다.


같은 독투성이의 날을 반복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문장은 결국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가.

나는 왜 나를 닳게 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미 나는 다른 페이지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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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은 소모를 멈추지는 못하지만,

소모의 방향을 바꿀 수는 있다.


이 새벽의 고요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닳아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닳아가느냐는 문제다.


무의미하게 흩어지느냐,

아니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마찰로 남느냐.


차는 이미 식어가고, 창밖의 어둠도 서서히 물러난다. 오늘도 나는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어쩌면 또 소모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무엇에 나를 쓰고 싶은지, 어떤 문장을 남기고 싶은지.


그 자각이 있는 한,

모든 소모가 낭비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소모’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소모란 줄어드는 현상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 남기는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