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순응은 흐름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방향을 선택해 따르는 것

by 마부자

아침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너무 밝은 시간이었다.

서재로 들어온 햇빛은 조용히가 아니라 분명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빛이 강할수록 숨길 수 있는 것도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미안을 다시 펼쳤다.

오늘도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대화에서 잠시 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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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건 그냥 편안함의 문제거든!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게 마련이듯

그럼 사람은 살기가 쉬워.

데미안 중에서 - 86page



순응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뜻을 강하게 내세우기 보다 주어진 흐름이나 조건에 맞춰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이 단어를 ‘적응’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해왔다.


환경에 맞추고, 관계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태도.


그렇게 보면 순응은 꽤 유용한 능력이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 단어를 바라보게 되었다.


순응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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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에 동의하는 순간일까.

아니면 스스로 생각을 멈추는 순간일까.


나는 두 번째에 더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응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상태다.

이미 결정된 흐름 안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


그 안에서는 선택이 필요 없다.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응은 편하다.

갈등이 줄어든다.

설명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필요도 없다.

틀릴 가능성도 줄어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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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다음이다.

순응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굳이 의견을 내지 않는 것.

굳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선택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


데미안의 해주던 말을 다시 읽어보았다.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


이 말은 단순히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단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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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훈련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반복해야 유지되는 능력이다.


순응이 반복되면

그 능력은 점점 약해진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큰 결정을 앞두고 있었을 때

생각보다 오래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판단했을 것들이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나는 그동안 ‘틀리지 않기 위해’ 순응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선택하는 힘’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순응을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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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은 분명 필요하다.

모든 순간에 저항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떤 관계는 맞추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선택해서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생각하지 않고 흘러가고 있는가.


이 차이는 아주 작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순응하며 사는 이 선택은 내가 한 것인가.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익숙해서 따르고 있는 것인지.


그 질문을 놓지 않는다면

순응은 더 이상 나를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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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빛은 이미 충분히 밝아졌다.

더 이상 어둠과의 경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시간이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빛은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 멈출 것인지.

순응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순응’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순응은 흐름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방향을 선택해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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