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은 더 이상 혼자의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비가 잔잔하게 내리는 이른 봄의 새벽.
창밖의 빗소리는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고, 형광등 불빛이 필요없는 햇살을 받으며 책상에 앉았다.
선과 악의 애매한 경계가 마치 요즘의 날씨를 연상케 하는 데미안을 다시 펼치며 그 속에 담긴 문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오래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갔어.
그리고 자신이 거기까지 가도록
도와준 악마로부터 마지막 순간에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당당한 개성을 가졌어.
성서 이야기에서는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손해를 보지.
어쩌면 그도 카인의 후예일 거야”
데미안 중에서 - 83page
개성은 남과 다른 나만의 모습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를 단순한 ‘다름’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은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우리는 개성을 취향의 문제로 생각한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을 선택하는지,
어떤 말을 쓰는지.
그런 것들이 모여 개성을 만들기 때문에 개성은 꾸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선택보다
보이지 않는 순간의 선택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날지도 모른다.
편한 길과 불편한 길이 동시에 놓여 있을 때
나는 어느 쪽으로 걸어가는가.
이해받을 수 있는 선택과
오해받을 수 있는 선택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개성은 그때 드러난다.
그래서 개성 안에는 늘 갈등이 있다.
부담이 따르고 때로는 손해가 따라온다.
나는 그래서 ‘개성을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운다.
너무 튀지 말 것.
적당히 맞출 것.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편했고, 대부분의 경우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은 안정적이었고,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개성을 드러낸다는 것이
어딘가 위험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달라졌다.
이제는 개성을 감추는 것보다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같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선택한다.
예전에는 ‘다르다’는 것이 설명해야 할 이유였다면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 하나의 가치가 되었다.
나는 이 변화가 단순한 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성은 이제 취향을 넘어서
하나의 방향이 되었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개성이 더 이상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개성들이 만나면서
그 차이는 충돌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완전히 다른 생각과 방식이 섞이면서
이전에는 없던 또 다른 색이 만들어진다.
하나의 개성이 다른 개성을 만나
더 넓은 개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개성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나’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름과 다름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흐름’에 가깝다.
나는 이 지점이 지금 시대의 가장 큰 변화라고 느낀다.
이제 개성은 특별한 사람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개성은 누군가와 만나는 순간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예전에는 개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개성을 드러내고 연결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나는 이 흐름 속에서
개성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개성은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세상과 연결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다름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간다.
나는 ‘개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개성은 더 이상 혼자의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