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갈등은 내가 원하는 것과 놓지 못하는 것이 부딪히는 순간이다.

by 마부자

서재의 창밖에는 희미한 빛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공기의 결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새벽의 정적이 가장 깊어지는 그 시간에 차를 한 잔 내려 책상 앞에 앉았다.


겨울과 봄사이에 생기는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낯선 온도 덕분인지 조금 더 솔직하게 책을 펼치게 된다.


오늘 데미안을 펼치며 내 시선을 붙잡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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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지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한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데미안 중에서 - 67page



갈등은 두 방향이 동시에 나를 끌어당길 때 생긴다.


하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놓지 못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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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갈등은 늘 선택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의 상태’를 드러내는 장면에 가깝다.


나는 가능하면 갈등을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갈등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더 단단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갈등이 없는 상태가 평온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된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갈등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내적갈등과 외적갈등.


내적갈등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변하고 싶지만 그대로 있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할 때,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고 싶은 순간에 갈등은 깊어진다.


이 갈등이 힘든 이유는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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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외적갈등은 나와 세상 사이에서 생긴다.

내가 원하는 방식과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 다를 때,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이 부딪힐 때 갈등은 시작된다.


나는 종종 그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곤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안에는 내 안의 두려움도 함께 섞여 있었다.


이미 지쳐 있던 날에는 같은 말도 더 크게 상처로 느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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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불안했던 순간에는 작은 차이도 견디기 어려웠다.


갈등의 시작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틈에서 비롯된다.


서로 다른 욕구, 서로 다른 해석, 그리고 서로 다른 속도.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할 때 갈등은 커진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원한다.


변하고 싶지만 잃고 싶지 않고,

솔직해지고 싶지만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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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가감정이 갈등을 만든다.


그래서 갈등은 잘못된 상태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과정에 가깝다.


문득 어제 생각했던 균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단단해 보이는 것에 생긴 작은 틈.


그 틈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생각.


갈등도 어쩌면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겉으로는 흔들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갈등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중요한 변화는 늘 갈등 이후에 찾아왔다.


머무를 것인지 나아갈 것인지,

익숙함을 선택할 것인지 불확실함을 선택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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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갈등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조금은 분명해졌다.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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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무엇이 부딪히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중에서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일이다.


모든 갈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어떤 선택은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도 있고,

어떤 결정은 나 자신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내가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 갈등은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다.


나는 ‘갈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갈등은 내가 원하는 것과 놓지 못하는 것이 부딪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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