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은 무너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스며드는 작은 틈이다
새벽이라 부르기에는 창밖은 이미 부드러운 빛이 번지고 있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차가운 공기는 계절이 완전히 바뀌지 않았음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잠시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다가올 일주일의 아침을 함께 할 책을 고르며 손에 잡히는 한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어쩌면 내가 고전문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첫 번째 세계문학전집이었던 이 한권이 시작일지 모른다.
이번주 이 데미안을 통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채 알속에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는 시간을 가져보기 했다.
“우리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 흘린다.”
데미안 중에서 - 28page
균열은 단단한 것에 생긴 틈이다.
겉으로는 아주 작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이미 달라지고 있다.
나는 그동안 균열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무너짐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애써 단단해지려고 했고, 이미 생긴 균열은 보이지 않게 덮으려 했다.
하지만 그 문장을 읽으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균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덮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갈 뿐이다.
문득 내 안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살아가던 날들 속에도
이미 균열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날에는 두려움으로 나타났고,
어떤 날에는 이유 없는 불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것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 강해지려고 했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균열은 더 깊어졌다.
균열은 약함이 아니라
이미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내 안에서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리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던 하나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된다.
단단한 껍질을 가진 씨앗이다.
씨앗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기 시작하는 순간,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균열’이다.
껍질이 갈라진다.
그 틈 사이로 아주 작은 싹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만약 그 균열이 없다면
그 씨앗은 끝내 싹을 틔우지 못한다.
균열은 파괴가 아니라
변화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늦게 이해했다.
그동안 나는 균열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완전한 상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상태이기도 했다.
균열이 있어야
그 안에 빛이 들어온다.
균열이 있어야
그 안에 공기가 스며든다.
균열이 있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내 안에서는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이 새벽의 빛도 한순간에 밝아지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변화가 쌓이며 결국 어둠을 밀어낸다.
그 과정 속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다.
어둠이 조금씩 갈라지고
그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나는 이제 그 과정을 믿어보려고 한다.
내 안에 생긴 균열을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는 ‘균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균열은 무너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 만들어지는 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