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 첫 걸음, 그러나 아주 천천히

일반병동에서의 첫날, 희미해진 기억들을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by 마부자

간밤의 잠은 평소와 달랐다. 깊은 휴식은 아니었지만, 술 없이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정돈되고 있는 평온함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젯밤은 아내가 일반 병실로 내려온 첫날밤이었다. 병실을 옮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고민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내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아내 곁에서 새벽을 맞이하며, 비로소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새벽 6시 30분, 아내가 일찍 눈을 떴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이어지는 질문들, "오늘이 며칠이지?",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어?" 같은 짧은 물음들이 작은 파도처럼 반복되었다. 나는 답해주고, 또 답해준다. 그녀는 잠시 듣고는 다시 묻는다. 기억 속의 빈칸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빈칸을 채우려는 모든 노력이 우리가 함께 재활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음을 알려준다고 믿었다.


익숙한 대답을 되풀이하며, 단순한 일상조차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마치 그녀의 질문 속에 담긴 의지와 내 대답 속의 다정함이 함께 재활이라는 이름의 긴 여정을 시작하는 작은 신호인 것만 같았다. 반복된 설명은 지루할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오늘, 그 작은 시작이 내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아침 식사는 7시에 도착했다. 병실의 공기가 차분히 깨어날 무렵이었다. 하지만 막 깨어난 아내의 상태를 생각하면, 따뜻한 밥 한 끼조차 그녀에게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입맛 없는 아침을 억지로 권하는 나는 마치 스스로를 협박범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약 대신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애써 설득하며 몇 숟가락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다행히 어제처럼 짜증 섞인 한숨은 들리지 않았다. 몇 숟갈, 다시 몇 숟갈. 그렇게 1/3쯤 비워진 식판을 바라보며 오늘 아침도 조용히 넘어갔다.


식사 후 양치와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은 그녀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작은 무대였다. "혼자 갈게," 하고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의지가 선명히 들렸다. 나는 살짝 거리를 두고,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며 도왔다.


문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 안에 담긴 결연함은 분명히 보였다. 아직 혼자 일어나 걷는 일은 힘에 부쳤다. 하지만 화장실 정도는 스스로 다녀올 수 있는 지금의 그녀는 어제보다 분명 더 나아 있었다.


이 짧은 순간, 단순한 일상의 조각들 속에서도 아내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회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를 바라보며 나 역시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우린 잘 해내고 있다."


아침 시간을 보내며 잠시 일기를 쓰면서 기도드린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감사합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빨리 회복하여 이 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하루빨리 기억을 되찾고 일상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마리아님,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 이 사람 빨리 회복하여 이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오전 내내 전화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아내의 지인들에게 차례로 소식을 전하며, 마음을 다해 안심시키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회사 동료들, 볼링 클럽의 친구들, 오래된 모임의 멤버들까지, 각각 다른 목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걱정과 안도의 기운이 교차했다.

“이제 안정됐습니다.”

“천천히 회복 중이에요.”

이런 말들을 반복하며 나 또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말을 내뱉을수록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렸던 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면서는 한층 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을 상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었지만, 큰 틀에서 상황을 설명드리며 최대한 걱정을 덜어드리려 애썼다. 그러다 통화를 아내에게 넘겼다. 아내가 어머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있던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약간 서운해하셨다. 자신만 몰랐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은 듯했다. 하지만 서운함 속에는 어딘가 안타까움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는 조금 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어머니를 설득했다.


이 짧은 전화 통화들이 단순한 소식 전달 이상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내를 대신해, 그녀의 세계와 다시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는 과정이었다. 하나의 소식이 한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또 다른 한 사람의 응원이 아내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모두가 조금씩 안심하고, 조금씩 강해지는 그 순간들을 나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아내와의 대화는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이 되길 바라며 시작했지만, 곧 뜻하지 않은 시험이 되곤 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대답을 이어가려 애썼다.

"오늘이 며칠이지?"

"우린 언제 집에 가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나는 대답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그 짧은 순간, 아내의 눈빛은 흔들렸고, 나는 뒤늦게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러면 안 됐다. 그녀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왜 이렇게까지 반복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고, 그 생각은 마치 작은 불씨처럼 내 감정을 태웠다. 짜증이 터져나온 내가 부끄러웠다. 그것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닌, 내 부족한 인내심을 향한 실망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의 반복된 질문 속에는 익숙했던 삶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지금 그녀가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려 노력했다. 차분해지기 위해 마음속으로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조금만 더 참자.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이 반복되는 순간들은 어쩌면 그녀뿐 아니라 나 자신을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아내를 향한 나의 사랑과 배려가 매 순간 흔들리지 않도록, 나는 매번 내 안의 흔들림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작은 싸움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점심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음식이지만, 아내에게는 여전히 멀게 느껴지는 존재였다.


숟가락 몇 번을 들고는

"맛없어"라는 짧은 말과 함께 내려놓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설득의 말을 꺼낸다.

“약을 먹으려면 조금 더 먹어야 해.” 마치 매번 새로운 설득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몇 번의 반복 끝에 1/3 정도만 먹일 수 있었다.


밥 먹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예전엔 서로의 식탁을 준비하며 웃음을 나누던 시간이 그립다. 지금의 식사는 단순한 생존을 위한 행위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간단해 보이는 일이 얼마나 큰 의지를 필요로 하는지, 나는 매번 절감하고 있었다.


식사 후, 아내는 계속 자신이 인천에 있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대구라는 현재의 위치는 그녀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왜 이런 혼동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어딘가에 묻혀 있는 그녀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모습이 아련했다. 마치 인천이라는 도시가 그녀의 마음속 안락한 피난처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혼란스러운 말들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기억을 되찾는 데에는 아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 곁에서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고, 그녀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어색하고 버거워도, 언젠가 이 단순한 일들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길 바란다. 밥 한 숟가락, 잃어버린 기억의 한 조각, 그리고 한 걸음의 재활.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일요일 오후 사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볼링장에서 열리는 개인전 대회에 참석했을 것이다. 지난달 아내가 볼링장 개인전 대회에서 우승을 했기 때문에 더욱이,


생각난 김에 아내에게 물었다.

"지난달 당신이 우승했는데 기억나?"


그녀의 얼굴에 잠시 의아함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우승을 했어?" 라며 나를 쳐다본다.


순간, 잃어버린 시간들이 그녀의 마음속에 남긴 흔적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금 느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사진 속 트로피를 든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기억 속 공백을 채우는 데에는 단지 사진 한 장과 내 말뿐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떠올리려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오늘은 누가 우승하려나?" 라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내가 있었으면 내가 했을 텐데."


그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농담처럼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예전의 활기와 자신감이 살짝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남은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것을 되새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들,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 가장 아픈 일이 아닐까 싶었다.


"당연하지, 당신이었으면 우승했을 거야,"라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이 살짝 저릿했다.


그럼에도 이런 대화들이 그녀의 기억 회복에 작은 단서가 되길 바란다. 잃어버린 조각들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오늘의 웃음과 농담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녀가 다시 볼링공을 쥐고, 예전처럼 자신감 있게 트로피를 들어 올릴 날을 나는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그 빈자리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갈 것이다.


오후에 볼링 클럽 회원들이 개인전 시합을 마치고 병문안을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그 순간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환자복도 더 깔끔하게 챙겨 입고, 모자까지 곱게 눌러썼다. 아직은 부드럽게 빗질된 머리카락 아래에 숨어 있는 그녀의 약한 모습이 남들에게 비춰지길 꺼리는 듯했다. 그런 모습마저도 그녀만의 자존심이었다.


회원들이 도착하자, 아내는 환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의 웃음은 단순히 밝은 얼굴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가 여전히 이곳에,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몸짓 같았다. 익숙한 농담이 오가고, 볼링장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피어나는 동안 방문한 이들의 눈빛에도 점차 안도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웃음이 그들에게도 힘을 전해준 듯했다.


물론 대화 중간, 그녀가 기억을 혼동하거나 질문을 반복하는 순간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가볍게 넘어갔다. 닥쳐온 상황 앞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하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마음 아프기도 했다. 마치 그녀가 삶의 한 조각씩 되찾아가려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30분간의 짧은 만남 뒤, 병실에는 따뜻한 공기가 남았다. 아내의 얼굴은 오랜만에 한결 환해졌고, 손님들 역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이런 작은 만남들이 그녀에게 회복의 동력이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오늘처럼, 그녀는 웃음으로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그 누구보다도, 그녀 스스로에게 가장 큰 위로였을 것이다.


저녁은 딸과 함께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니 아내의 표정도 밝아졌다. 딸이 음식을 하나하나 챙겨주자, 평소보다 훨씬 잘 먹는 모습이었다. 간단해 보이는 그 장면이 내게는 묵직한 안도감을 주었다. 이 작은 풍경마저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식사 후 아내는 졸음이 몰려온다며 침대에 누웠다. 잠시 평화가 흐르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며 일어났다. 익숙한 듯 낯선 장면이었다. 트림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그녀는 탄산음료를 찾았다.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아픈 그녀였다. 모든 작은 신호가 걱정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는 섣불리 거절할 수 없었다.


탄산음료를 조금 주고 나서야 그녀는 한결 편해진 듯했다. 트림을 더하면서도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아내의 이런 모습을 과거에도 자주 보아왔기에, 그것이 병의 징후가 아니라 신경성이라는 걸 알았다. "이대로 잠자리에 들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마저도 쉽게 전할 수 없는 말이었다.


결국 간호사를 불러 소화제를 요청했다.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다독이며 그녀를 돌보는 동안, 나의 마음속에서는 또 한 번의 싸움이 벌어졌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얼마나 더 인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과, 그녀에게 더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 사이의 충돌이었다.


오늘 밤도 그렇게 지나갔다. 병실의 고요 속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다시 차분해지기를 기다리며,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작은 탄산음료 한 모금조차 그녀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지금의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간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합니다."

간호사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이어갔다.


긴 병상 생활에서 익숙해질 법도 한 대기였지만, 그녀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아내는 자기 몸이 스스로도 짜증 난다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놔둬. 뭐 이러다 죽지."


그 말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다.

"뭐 그런 소리를 해?"


하고 따끔하게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고단함이 깃든 그녀의 목소리엔 자신을 향한 한탄과 무력함이 담겨 있었다. 아픈 몸이 주는 무거운 감정에 자신마저 질려버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는 그저 웃으며 넘겼다. 그래, 지금은 내 화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달래야 할 때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아내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잠에 들었다. 신기할 정도로 조용해진 병실, 방금 전까지의 답답함은 온데간데없고, 트림마저 멈춘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침대 곁에 앉아 잠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평화로운 순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마음속에서 기도가 흘러나왔다. "이 사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밝고 더 나은 모습으로 깨어나게 해주세요." 그 말이 닿을지 모를 어딘가를 향해, 나는 속삭이듯 간절한 마음을 보냈다.


병실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침대에 기댔다. 그녀의 고른 숨소리에 내 마음도 서서히 잔잔해졌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내일이 오면, 우리는 또 함께 오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