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왜 홀로 남겨졌을까?

Macaron 감성살롱

by Maca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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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날것 그대로의 본성을 보고 싶으면 술자리 끝물을 가보면 안다.

가서 보면 열이면 열 화자만 있고 청자가 없다.

사람은 다들 화자이고 싶어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바란다.

어릴 때는 조금 트렌드를 빨리 접해서 세련됨을 조금이라도 빨리 찾은 사람이 무리의 갑이 된다.

인간관계를 갑을로 정의하는 게 결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지만,

내적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은 미숙한 인간은 인간관계를 수평적으로 인식할 밸런스 조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름의 가치 경중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관계를 수직적으로 인식하고 풀어나간다.

어릴 때는 아무래도 내면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없는 시기기 때문에

외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거기서 갑과 을을 나누고,

따라서 나이가 어릴수록 외모가 무리의 위계질서를 확립하는데 거의 절대적인 경우가 많다.

남자의 경우는 힘, 여자의 경우는 외모.

재미있는 건 여기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 듣는 걸 좋아하느냐? 그건 아니다.

갑에게 맞춰주기 위해 화자의 본능을 억누르고 갑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인 "척"을 할 뿐이다.
.
이제 나이가 든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고 수많은 인연들과 부대끼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외모와 힘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즉 다양한 매력에 눈을 뜬다.

그것이 재력일 수도, 성격일 수도, 수수하지만 범접할 수 있는 기품일 수도,

외모는 별로지만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일 수도,

"을"의 자리에 있던 사람은 자신만의 매력을 인식하고 새로운 "갑"이 되어 기존의 "갑"을 떠난다.

오히려 이들은 들어주는 "을"의 시절을 지나오며 듣는 법을 학습했기 때문에

새로운 "갑"이 되어서도 자신을 따르는 "을"을 살필 줄 아는 아량과 여유까지 겸비한 경우가 많다.

이들의 갑을 관계는 서로가 청자와 화자를 오가는 수평적 관계이기에

수직적인 기존의 갑을 관계와 비교할 때 더 편안하고 아늑하다.

반면 인격이 형성되기 전부터 막무가내 갑질에 익숙했던 기존의 "갑"들은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춰주는 관계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미 자신의 매력을 깨닫고 새로운 "갑"이 될 준비가 된 "을"에게 여전히 이를 요구한다.

처음에는 그냥 참으며 이해하려 노력하던 "을"들도 자신이 인내할 수 있는 탄성점을 지나는 어느 순간

고무줄이 툭 끊어지듯 "갑"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기존 "갑"은 당황한다.

"아니, 난 평소 하던 대로 계속해왔을 뿐인데 왜 사람들이 자꾸 떨어져 나가지?"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떠나간 "을"들을 원망하며 남아있는 "을"들에게 하소연한다.

"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옳다고 끄덕이며 들어주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길 바라지만
"을"은 그들이 왜 떠났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상황이 반복이 되면 남아있는 "을"들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다.

질문을 하나 던질까 한다.
"갑"은 왜 홀로 남겨졌을까?
난 답을 내리지 않겠다.

왜냐면 당신이 이 부분까지 이 글을 읽었다면 내가 표현하는 것 그 이상으로 더 적나라하게 깨달았을 거니까.
때문에 난 여기서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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