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by 포카혼타스

나는 나의 삶에 색깔이 꽤나 다양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딸이기도 하지만, 누나이기도 하다. 직장인이기도 하지만, 예비법조인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요리사도 되었다가, 기타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주말에는 수영도 하다가, 친구 얘기를 곤히 듣는 사짜 심리상담사 가면을 쓰기도 한다.

"엄마, 나는 그냥 내가 살아온 인생을 얘기하는 건데 그 얘기만 듣고도 사람들이 불안해해."

엄마가 나에게 왜 더 이상 교회를 가지 않느냐는 물음에 나는 저렇게 답했다.

작년 여름, "더 늦으면 아이 못 낳을 수도 있으니 2년 안에 졸업, 시험, 취업, 결혼, 출산 생각해라."라는 남자친구부모님의 말에 나는 그냥 헤어지자고 했다.




그의 집안은 날더러 페미니스트라 했지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나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몇 개월 안 그들이 나를 그리 본다니 정말 그런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오래 안 지인 그 누구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러고 난 뒤 2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회사 법무팀에서 인턴을 하다가 상무님과 개인면담을 하던 도중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하게?"라는 물음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평소의 나 같으면 아마 넉살 좋게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그게 고민이네요." 하고 넘겼을 텐데 그날은 그게 안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알려준 정답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을 하라는 거였다. 그들 또한 한국사회를 숱하게 겪으면서 배워야 했던 문장이었을 테다. 그 무렵 나는 내가 더 이상 100%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싱턴 DC 슈퍼마트에서 계산을 하다 스페인어로 뭉텅뭉텅 대답을 하니 "너 모국어가 뭐야?" 하기에 "한국어"라고 하니까 "너 영어도 하는 거지?"라고 물어 "그렇다."라고 얘기해 줬다. "와우, 너 엄청 똑똑하네!"라는 마트 캐셔의 칭찬은 기분이 좋았다. 그 이면의 나는 웃지 못할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인인데... 이 문화가 왜 이렇게 힘들지? 여기에 맞춰서 못 살 것 같은데. 근데 난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교까지 나온 그냥 한국 사람인데. 도저히 여기에 맞춰서 살 수가 없네...

그 무렵 나는 심리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사 선생님은 이 과정들을 함께 해주셨고, 또 많은 노력을 해주셨지만- 그 과정 속에서의 외로움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세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여러 가지 짬뽕문화를 경험한 것은 나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상하게 느끼는 포인트도, 못 받아들이는 포인트도 누군가에게 얘기했을 때 '야, 진짜 이상하다!'라고 얘기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이 나를 굉장히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나의 말을 계속 마음이 묻고 묻게 했다. 대개는 '다 그렇게 살아. 안 그럼 뭐 어떡해.' 아니면 '그게 뭐가 이상해?' 하는 포인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들과 얘기하면 할수록 내 세계가 좁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이런 이유로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대학교 동기들은 대뜸 '야. 이 테이블에서 너보다 인생 열심히 산 사람 없어. 여기에서 너보고 뭐라 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마음이 시렸다. 그건 아마 나의 어려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나의 부침은 나누고 싶었던 그들의 마음 때문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