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의 이야기를 하는데, 가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을 때가 있다.
"그거 다 알고 있는 거야."
"어차피 너 이거만 하는 거잖아."
"저것도 해봤어? 저건 안 해봤지? 난 해봤는데."
나의 첫 반응은 우선 고개를 갸우뚱하는 거다. '왜 저런 말을 하지?' 싶어서다. 나의 1의 이야기에는 자랑이나 과시하고 싶은 말은 없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들렸나 보다. 아니면 그게 듣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나 보다.
1의 이야기는, 애석하게도 이런 거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리고 싶어요."
영어의 문장이라면- "If there is anything that I can help with, please let me know. I would be happy to help you if I can."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아마 듣는 이들은 대개 고맙다고 얘기하며 그 말에 더해 '나 또한 너를 돕고 싶다.'라고 얘기하는 이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마 동양인 여자 사람이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마음을 전달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어로 전달된 나의 1의 이야기는 때로는 그 직업 세계에서 경험이 많다고 여겨지는 선배의 마음을, 교회의 지긋이 나이 많은 장로님의 마음을, 혹은 여전히 직장문제를 놓고 전전긍긍해하던 비슷한 또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것은 때로 '진심 어린 충고',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합격비법' 같은 포장지를 갖고서 내게 다시 돌아왔다.
재밌는 것은 내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저는 다른 길도 있을지 모르니 좀 생각해 보려고요.'와 같은 말을 하면 '아니, 내 말을 따라야 한다니까? 안 그럼 큰일 나!'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어디에서부터 어긋난 마음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돌아온 마음들이 필요가 없었다.
"주중에는 공부만 하니 버겁네요."라는 말에
"어휴, 우리 신랑도 우리 아들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학비 보낸다고 해서 버겁다고 해~ 그래도 우리 아들 곧 졸업이니까~"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와, 요즘 달러 비싸던데 대단하시네요."라는 말을 할까,
"그래요? 저는 제 공부하느라 너무 정신없어서요."라는 말을 할까 고민을 했다.
이런 일들이 수차례 반복된 이후에나 비꼬는 말, 자랑, 깎아내림은 결국 질투와 불안에서 온 것이라는 알아차렸다.
그녀는 아마 내가 로스쿨에서 공부를 하고, 로펌에서 인턴을 한다는 사실에 질투와 불안을 느낀 것 같았다.
그와 별개로 나의 삶은 실제로 하루하루가 치열했고 건조했고 고독했을 뿐이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알아차려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과 가까이 지낼 것인가 하는 고민은 이어졌다.
그들은 내가 '맞아,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네. 네 말대로 했어야 했는데. 커다란 실수를 했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 이상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은커녕,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0이라 할 때 여태껏 1을 얘기하고 살아왔는데 어쩌겠는가.
그들의 경험과 지혜에 때때로 감탄했지만, 그들의 충고가 항상 내 결과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라는 1의 이야기에
"그리 얘기해 주니 고맙네. 나도 너를 돕고 싶거든. 언제든지 얘기해."라고 말해주는 사회에 속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