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보다 내가 먼저였다.

나이와 결혼, 그 사이에서 찾은 내 이야기

by 포카혼타스

"뭐, 맞아. 이 나이 먹도록 결혼 안 했지. 근데 그렇다고 내가 이혼을 하거나 애가 있는 게 아니잖아. 그냥 적당한 짝을 못 만났고, 결혼을 안 했을 뿐이라고."



아마 나에게 그 말을 했던 그는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서양권 문화의 사람이었기에 나이 상관없이 결혼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않고 살 줄 알았다. 그래도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오고 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은 하는 모양이었다. 대개 자기 또래의 싱글들은 한번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거나 결혼하지 않고서 자녀만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의 답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해외에서 살 적 나는 나의 나이를 까먹고 살았다. 아무도 나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특히나 여자의 나이를 묻는 것은 금기시되는 분위기도 있었다. 행정 처리를 해야 하거나 병원 갈 때가 되어서야 내 만 나이가 이렇구나. 곧 바뀌겠네.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사람들은 나의 간략한 배경 설명만 듣고서 몇 살 쯤이겠거니 추측은 했겠지만, 그것이 서로 소통하는데 큰 장벽이 되지는 않았다. 나이를 알건 모르건 호칭에 있어서 나는 그냥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 되었고, 아이들의 경우엔 장난기를 더해 별명을 부르면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결혼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해야 할 얘기들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일 어때?' '요새도 요리해? 무슨 요리해?' '다음 휴가는 어떻게 보낼 생각이야? 우리 집에서 OO생일파티 할 거거든. 혹시 올 생각이 있나 궁금해서.' 그런 주제들은 나보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 뻘이나 적당히 나이 있는 엄마 뻘을 가리지 않고 나에게 던져졌고, 비슷하게 나도 9살, 11살 먹은 아이들에게 던졌다.

'요즘 주말에 수영을 하기 시작했어. 처음에 물에 들어갈 때는 추워서 입이 딱딱 거려. 근데 조금 지나면 안이 따뜻해지고 밖이 추워지는 거 있지. 그래서 물에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배웠어.'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나에게 나누어주었다.


30대 초반 한국으로 돌아온 무렵,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틀고서 사람들을 만나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아, 누구 만나셔야겠네! 저기 저 사람 싱글이에요.' '아, 누님이시네! 남자친구 없으시죠?' '어머! 진짜? 빨리 결혼해야겠다~ 나도 그때 결혼했거든. 만나는 사람 없지? 빨리 해야 돼! 결혼은 멋모를 때 해야 된다고.'



무슨 소개를 해도 결혼으로 이어지는 결론에 나는 아차, 이게 이 나이 때 사람들이 겪는다는 명절증후군 같은 건가? 싶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 낭창히 그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이 년 전이었나, 할머니 댁에는 더 이상 명절 쇠러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자꾸 친구에게 올해는 시집가겠다는 약속을 기어코 받아내고자 무릎을 꿇리고 일장연설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할머니, 결혼 얘기만 계속하시면 저 내년에 못 와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알겠다, 이제 그만하겠고마.' 하시고서는 5분 뒤에 다시 결혼얘기로 어떻게든 이어나가셨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지방 도시의 사람들은 대개 나를 '해외에서 허송세월하다 결혼적령기에 결혼할 사람을 만들지 못한 이'로 여겼다. 지금 이 나이쯤엔 누군가를 만나거나 결혼을 해서 출산을 생각했어야 한다는 거였다. 정작 나는 그들의 때에 맞춰 살 생각도 없었고, 결혼적령기에 맞춰 적당한 이를 만나 결혼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 나름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이를 만나 시간으로 신뢰를 쌓고 그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안정감이 아니면 결혼을 편안하게 할 수 없음을. 그게 아니면 이도 저도 후회할 결혼을 하며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아픔만 남길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얘기만 줄곧 해대는 이들에게 이런 나 자신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에게 나는 '일만 쫓는 사람', '너무 자유로운 영혼', '결혼제도에 안 맞을 사람' 등등의 단어로 치환되어 그들의 마음에 닿았다. 뭐 어쩌겠는가. 그건 그들의 마음이고, 나는 나의 마음만 다룰 수 있는걸.


나는 다만 간곡히 결혼이 아닌 다른 얘기를 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예컨대 요즘은 어떤 책을 읽는데, 정말 읽고 나서 기분이 나빠졌다던지. 아니면 주중에는 너무 지쳤었는데 주말에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파도소리만 듣고 있었는데도 휴식이 되었다던지 하는 그런 얘기들. 그런 얘기를 나눌 사람들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얘기들의 끝에는 '나는 지금이 진짜 좋거든. 근데 누구라도 만나서 빨리 결혼을 해야 할까 봐. 출산이 걱정되니까...' 혹은 '그래도 내가 남자니까 결혼하려면 집이라도 해가야 하는 거 같은데... 집 값을 보면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이런 식의 이야기가 점철이 되어있었다.


그 무렵 지구 반대편의 한 오랜 친구는 나에게 '야. 결혼은 나이가 되어서 하는 게 아니야... 되게 이상하다. 너 혹시 무슬림이야? 네가 그 나이가 되었는데 결혼 안 해서 사람들이 너한테 계속 얘기하고 그걸로 스트레스받는다고 하니까 그렇게 들려. 결혼은, 그 사람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발전시키고 남은 일평생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결정하는 거야. 출산은 당연히 그다음이고.'


나는 그 말에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말을 따라갈 힘이 내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여기인걸? 너의 삶의 속도와 나의 삶의 속도가 다를 수도 있음을, 너는 쉬이 얘기할 수 있으나 나는 여기서 목청이 터져라 얘기해도 들릴까 말 까야... 되려 나를 걱정하는 척하며 손가락질이나 안 하면 다행일까.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그들 나름의 자부심 있는 경험으로 '결혼을 못했으니까 뭐 그런 얘기하고 살아요.' 하는 단정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어휴, 그걸 다 이뤄놓으면 뭐 해! 결혼을 못했는데!' 하는 비아냥 속에서 어떻게든 뿌리내려보겠다는 결심은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모든 미션을 잘 수행해 오셨습니다. 이번 미션은 결혼! ㅇㅇ살까지 클리어하세요.'라는 인생은 곧 죽어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고개를 떨궜다. 그건 내가 당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볼 때, 나와 당신 사이에는 결혼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다른 이야기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