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의지

윌리엄 L. 샤이러의『제3제국사』를 읽고

by 꽝쾅쿵
“다음 국제적 분쟁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건 강대국들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의지면 충분하다.”


이 대사는 게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8번째 작품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의 마카로프의 대사다. 작중에서 그는 그 자신의 모국 러시아의 공항에서 학살을 저지른 뒤 이를 미국의 소행으로 조작하여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내가 처음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접하고 점점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당시, 벌지 전투 등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콜 오브 듀티: 유나이티드 오펜시브』에서 ‘내가’ 수세에 몰려있을 때 P-47과 셔먼 전차가 지원을 온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이와 같이 나는 어릴 때부터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많았고, 그 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있었던 히틀러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러한 나쁜 짓들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고 말이다. 아동을 위한 책에서 유대인을 몇만 명 죽였다고 했지만 그 숫자가 정확히 어떤 함의를 지니는 것인지, 한 사람이 죽더라도 그에 따르는 슬픔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히틀러가 연합국의 공세에 맞선 멋진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크면서, 다른 책들을 읽어가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콜 오브 듀티』와 같은 게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참상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나 에리히 프롬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히틀러가 어떠한 짓을 저질렀는지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히틀러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한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하는 것은 차치하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생각한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가 결국 실행해 낸 측면에서 그는 범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했더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또다시 생각이 바뀌어 간혹 책에서, 뉴스기사에서 히틀러를 보긴 했어도 정말 극악무도한 사람이고, 어린 시절 저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한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면서 나의 기억에서, 관심사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난 후 나는 궁금해졌다.


“영화의 주인공 루돌프 회스, 히틀러, 스탈린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러한 짓을 저지른 것인가? 또다시 도덕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증오하여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내 이해의 범주 안에 있고 논리적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몇백만 명, 몇천만 명을 죽이기 위하여 아주 정교하고 효율적인 기계와 말 그대로 ‘인간 도살장’을 설계하는 수고스러운 노력을 들일 필요가 있는 것인가? 나라면 귀찮아서라도, 전쟁을 수행하여 연합국에 맞서는 것만 해도 바쁜 마당에, 차라리 살려서 강제 노동이라도 시키지. 왜 나에게 손해밖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인가? 지도자가 그러한 일을 벌일 때 그 지도자를 뽑은 국민은 어떤 행동을 했는가?”

이러한 궁금증과 함께 나는 다시 한번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 즉 제3제국과 그 제3제국을 건설한 히틀러에 대해 궁금해졌다. 이러한 궁금증, 그리고 후에 말할 또 다른 이유에서 나는 윌리엄 L. 샤이러의 『제3제국사』(원제: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제3제국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시기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나치가 패망한 1945년, 그리고 전후 처리를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1960년에 출간된 이 책은 전후 압수된 제3제국의 문서, 처칠과 같은 여러 주요 인물의 회고록과 일기 등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저자는 1918년 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과 주변국의 국제 정세, 독일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히틀러라는 한 사내의 도정을 서술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 히틀러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당시 독일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 뒤로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지, 정권을 잡은 후에는 자신의 정복욕을 어떻게 실현했는지, 그리고 당시 영국, 프랑스, 소련 같은 나라들이 이에 어떠한 대응을 했는지, 이러한 히틀러의 정복욕은 어떻게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는지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 초기 제3제국의 승리와 실패, 나락으로 떨어져 제3제국과 히틀러의 마지막 나날들이 어떠했는지 서술하며 책을 마친다. 이 같은 제3제국의 역사를 읽으면서 내가 깨달은 바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책에서 서술되는 수많은 사건을 보면 이성적인 인간이, 그리고 이 이성적인 인간이 모인 국가가, 더욱이 강대국이 하는 결정과 행동이 반드시 수많은 숙고를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숙고를 거쳐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제삼자가 보기에는 아주 멍청한 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추축국 3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가 서로 긴밀히 협조했고 진주만 공습 후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일본을 도와 호기롭게 독일 또한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추축국 3국은 서로 긴밀한 협조는커녕, 독일은 타국을 침공할 때 단 한 번도 사전에 이탈리아에게 정확한 침공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일본 또한 진주만 공습 날짜를 독일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며 독일은 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후에야 이를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군대는 독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 유명한 로멜은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가 실책을 저지른 후 이를 지원하러 가 대활약을 펼친 것이었다. 추축국 3국이 긴밀하게 협조해도 2차 세계대전을 이기기 어려운 마당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러한 조잡한 팀워크는 나로 하여금 비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렇다면 연합국은 달랐는가? 전간기 영국과 프랑스의 행태는 그야말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의 속담에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히틀러가 정복욕에 불타 오스트리아 병합, 체코 침공을 행할 때 영국과 프랑스는 그저 전쟁이 발발할까 두려워 거의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만약 전간기 히틀러의 대담한 결정에 대해 사전에 제동을 걸었다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는 히틀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체코를 히틀러에게 헌납한 ‘뮌헨 협정’을 체결한 뒤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자신 있게 말한 체임벌린은 소위 '정신승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물론 추축국 3국의 저러한 서로에 대한 불신은 어쩌면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국제외교의 격언에 비추어볼 때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가 양국에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히틀러의 광란에 대한 연합국의 유약한 대처가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두 사례가 강대국과 위대하다고 받들어지는 한 국가의 지도계층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옳은 결정을 하리라는 환상에 대한 완벽한 반론은 될 수 있으며, 저러한 역사의 등장인물들이 하는 실수에서 우리가 하나라도 배우고 깨닫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두 번째 깨달음은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처음에 쓴 마카로프의 대사는 맞는 말이다. 다만 히틀러를 염두에 두고 마카로프가 맞는 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를 그 자리까지 가게 하고 전쟁을 일으킨 동인은 강한 의지였음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의지에는 수많은 권모술수, 거짓, 음모, 폭력이 곁들여져 여러 위대한 철학자들이 말한 숭고한 의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치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는 말 그대로 진실을 담은 영화가 아니라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할 만하다.


내가 말한 ‘한 사람’이란 히틀러가 아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솔직히 아직도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수많은 부역자가 도대체 왜 그러한 수고를 들여 유대인을 학살했는지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역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무지와 외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히틀러는 수많은 음모를 꾸미고 괴벨스를 필두로 국민을 선동하긴 했으나, 어쨌든 히틀러가 정권을 잡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독일 국민들 자신이었다. 물론 당시 독일 국민 전체가 히틀러에 동조한 것은 아닐지라도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히틀러는 집권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독일 국민들은 이를 방관했다.


전쟁 발발 후에는 어떠했는가? 독일 군대의 참모들도 히틀러의 광란에 외면한 것은 마찬가지다. 마치 무능한 상사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회사원처럼, 독일의 내로라하는 장군들은 히틀러의 격노와 고집스러운 성격에 못 이겨 히틀러의 말을 그대로 따랐고 이는 중대한 군사적 실책으로, 이러한 실책은 독일군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유대인 학살이 이루어진 절멸수용소를 비롯한 수많은 수용소에 대해서 독일 국민들은 몰랐을까? 제3제국이 이를 드러내놓고 밝히진 않았더라도 국민들은 어렴풋이나마 이러한 수용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히틀러의 극악무도한 짓에 대해 저항한 이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발퀴레 작전’을 실행한 슈타우펜베르크 같은 인물도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실패했고, 이 작전 실패의 여파로 수많은 사람들이 숙청당했다고 전해진다. 아마 나와 같이 흔한, 일반적인 국민들은 이러한 처벌에 대한 무서움으로 히틀러의 광란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에 대해 나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러한 히틀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독일을 파멸로 이끌고 갔다. 전후 독일은 분할되었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독일을 독일 국민은 전쟁에 대한 책임으로 직접 복구해야 했다.


만약 독일 국민이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그가 정권을 잡지 않도록 했다면, 그가 음모를 꾸미고 대중을 선동한다는 것을 깨닫고 투표에서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그것이 아니라면 정권을 잡은 뒤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히틀러에 반대를 했다면 인류 최대의 참상으로 기록된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작년 12월 3일 이후로 이 나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히틀러가 제3제국을 건설할 때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올해 초 이 책을 사게 된 두 번째 계기는 처음 말한 제3제국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이 책을 읽기에 시의적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내가 정치적 발언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단호히 반대한다. 윤석열이 한 행태는 명백히 반헌법적 행위였으며,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행위였다. 계엄령 선포 자체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도 하지만, 백번 양보해 계엄령이 대통령이 지닌 권한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포고령에 담긴 의사에 대한 ‘처단’이라는 표현, 국회 진입을 막으라고 명령한 것은 명백하게 반헌법적이다. 헌법은 국가를 존립하게 하는 유일한 근거일진대, 그 국가의 대통령이 반헌법적 행위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옹호할 수가 있을까?


어쨌든 우리나라는 독일, 여타 독재국가가 걸었던 길을 걷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파면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 닥친 위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반헌법적 행위를 했던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은 아직 처벌받지 않았다. 또한 국민들을 무지에서 해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이 과연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과연 이 나라의 국민들이 독일 국민들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지, 좌우 진영을 떠나 히틀러 같은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인간을 뽑지 않도록 그 자신이 지닌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국민들이 제3제국을 잉태한 당시 독일 국민들의 전철을 밟는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또 다른 히틀러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원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알베르 카뮈, 『페스트』,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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