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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가 Oct 21. 2020

사무실에서 정치하는 놈

사내 정치에 대한 개똥 같은 고찰.

"형은 정치적이야!"


기획하는 동생 놈의 말 한마디가 대가리에 박힙니다. 자꾸 되뇌게 됩니다. TV 뉴스를 보며 정치하는 새끼들을 욕했던 제게, 사무실내 정치하는 행위를 늘 비난하던 제게 꽤나 상처가 되는 말입니다. 살면서 처음. '내가 정말 정치적인 인간인가?'라는 진지한 고민을 해봅니다. 합리적이며 타당한 무언가를  찾아야겠습니다. 찾지 못하면 저는 오늘 밤, 집 천정을 바라보며 날이 밝을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테니까요. 성격이 그렇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 나라의 정치판을 바라보던 국민이라면 '정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정치판은 늘 그랬습니다.


전광판의 초록불. 그 날은 나름 평화로웠다.


반짝이는 금배지를 달고 국민 모두를 위한 합리적이고 타당한 정책과 각종 법을 수립하는 일. 정치하는 그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 중 누군가는 이득을 얻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언가를 잃거나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선거. 어떠한 안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관심을 갖게 되고, 내게 이득이 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무리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만약 그것이 나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지 않거나, 상관이 없는 주제라면 이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접근합니다. 이때 그 사람이 가진 본성이 드러납니다. 가치관 또한 명확하게 드러나죠. 특정 제도나 법률 그리고 정책 등을 개선/수립하면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도 그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 이제 이것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기업이라는 조직에 대입해 봅니다. 먼저 '회의'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이 역시 그다지 좋은 감정이 떠오르는 키워드는 아니네요. 뭔가를 고민해야 하고 피곤합니다. 성과를 들먹이며 누군가가 질타를 당하거나 궁지에 몰립니다. 피가 마르는 자리. 굳은살이 박인 리더급도 사실 피하고 싶은 자리입니다. 성격 자체가 소심하거나, 늘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자라면 회의실에서 보내는 1분 1초가 지옥 같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캐릭터를 큰 덩어리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저 쌈닭.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치고 들어오는 놈. 네 편 내편이 없음.

- 회사 또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놈. 제정신이라면 주로 통계를 들고 옴.

- 개인의 실익을 위해 말빨 조지는 놈. 대부분이 이 부류에 속함.

- 사무실내 가구인지, 사람인지 판단 안 되는 놈. 그냥 말이 없음.


회의는 어떠한 안건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입니다. 목적은 늘 명확합니다. 문제가 생겨났고 그걸 해결해야 하죠. 협업하는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의견을 받아 수렴/적용해야 하고 각종 질의. 말싸움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매번 한 편이 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고, 한 화면을 보며 회의를 했건만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집단적 사고와 지성을 원했던 건데...


의견을 내뱉는 순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치하는 놈이 됩니다. 나의 주장과 의견에 힘이 실려야 하고, 그러려면 나와 같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자. 동조,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아 한 편이 되어야 합니다. 최대한 많이 찾아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은 본디 그런 겁니다. 객관성은 그로부터 생겨납니다. 일을 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모두가 정치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 없이 그리고 별 다른 의견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무능한 자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의견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등의 나쁜 목적을 갖고 있다면, 이에 대한 판단은 말을 뱉는 자가 아닌 듣는 자의 몫입니다.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 이 또한 무능한 겁니다. 그 의견에 맞받아칠만한 자료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 열등한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치열했던 회의실을 나오며 또다시 회의감이 듭니다. 여러 고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무언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훌훌 털고 내일은 달라지겠지만, 오늘 하루 뭘 어찌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숙면 배게를 주문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잠을 못 잘 듯해서요.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에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사무실에서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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