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설득에 대해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라 오해하곤 한다.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기, 혹은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수단으로 여긴다. 하지만 정흥수 작가의 '설득자'를 통해 내가 만난 '설득'의 얼굴은 전혀 달랐다. 설득은 상대를 향한 가장 깊은 배려이자, '다정한 언어'로 쌓아 올린 신뢰였다.
나는 설득을 '다정한 언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설득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말하면서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9쪽)
진정한 설득의 시작은 '나'라는 한계에서 나오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내가 편하기 위해서" 혹은 "이게 정답이니까"라는 말로 상대를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설득자는 중심을 '나'에서 '상대방'으로 옮긴다.
"작가님, 나머지 원고는 한글 문서로 작성해 주세요. 그래야 제가 작업하기 편합니다." 같은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작가님, 나머지 원고는 한글 문서로 작성해 주세요. 그러면 작가님의 책이 정교하게 나와 빠르게 독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129쪽)
다정한 제안으로 바꾸는 한 끗의 차이는 설득에 있다. 이는 단순한 말하기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을 진심으로 고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심의 태도다. 이러한 '탈자아'는 리더십에서도 빛을 발한다. 리더는 흔히 자신의 높은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며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책은 말한다. 그 기준은 당신이 성장해온 삶의 궤적일 뿐, 타인의 속도를 재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각자의 속도를 인정하고 그에게 이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리더의 설득이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을 한심해하지 말자.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자. 리더는 기준이 높아서 일을 잘해왔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앞으로도 계속 높은 자리로 올라갈 것이다. 자신의 기준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밀지 말자. 각자의 속도가 있다. 개인의 역량에 맞춰 성장하도록 이끌어주자. 그것도 리더의 능력이다. (228쪽)
흥미로운 것은, 타인을 향한 이 다정한 시선이 결국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누군가의 무례한 언사에 발끈하는 이유는 그 말을 내 안으로 흡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득의 원리를 이해하면 '나를 만만하게 봐서 하는 말'이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저 '저 사람의 표현 방식일 뿐'이라며 나와 타인을 분리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누군가의 무례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만, 사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내 생명의 일부를 떼어주는 일과 같다. 그렇기에 설득의 자리는 엄숙하고도 귀하다. "자료는 잘 준비했나?", "내가 실수하면 어쩌지?" 같은 자기 중심적인 불안을 치우고, 내 목숨을 나누어 주고 있는 눈앞의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먼저 가본 안락하고 풍요로운 미래의 세계로 상대방을 초대하며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는 함께 성공할 것입니다"라고 선포하는 진심의 과정이다.
한강은 '빛과 실'에서 말했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인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한강의 말처럼 일이란 개인적 삶의 상당 부분을 맞바꾸는 것이다. (306쪽)
마지막으로 "책에서 얻은 무언가가 내 삶을 깨부수고 통과하면 그전과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책을 통해 배우고 혁신되었다면, 나는 이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문장들이 내 삶을 깨부수고 통과했기 때문이다. 좋은 독서는 내 언어의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변화된 나의 언어는 이제 누군가의 삶에 볕을 들이는 다정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