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예측 가능한 선 위를 달리지 않는다. 흔히 치밀한 계획과 정밀한 프로세스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 믿지만, 나심 탈레브의 저서 '안티프래질'은 그 믿음이 얼마나 '프래질(Fragility, 취약성)'한 오만인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명확하다. 진정한 성장은 완벽한 통제가 아니라,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충격과 무질서 속에서 꽃피운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가변성, 무작위성, 무질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번창하고 성장하며, 모험과 리스크,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인 프래질에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단어는 없다. 이제부터 이런 단어를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고 부르자. (9p)
우리는 보통 충격을 받으면 깨지는 '프래질'의 반대말이 단단한 '강건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건함은 충격을 견딜 뿐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반면 '안티프래질'은 가변성과 스트레스를 성장의 연료로 삼는다. 마치 히드라의 머리가 잘릴수록 더 많이 돋아나듯, 안티프래질한 시스템은 혼란 속에서 오히려 번창한다. 나를 해치려 했던 시련들이 결국 나를 가장 크게 성장시켰다는 본문 속 역설적인 문장은, 고통을 성장의 필수 영양소인 '호르메시스'로 재정의하게 만든다.
*호르메시스(Hormesis) : 적당한 스트레스와 독성이 오히려 신체를 강화하는 현상
결국, 우리에게 혜택을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조언해주고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해치려고 했던(그러나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상당히 착잡하게 한다. (71p)
안티프래질적 접근법 중 하나로 '바벨 전략'에 있다. 이는 양극단 전략을 취함으로써 하방 위험은 최소한으로 막고 상방 이익은 무한히 열어두는 것이다. 90%의 자원을 안전한 기반 위에 두어 생존을 보장하고, 나머지 10%를 도전적인 영역(예: 소설 집필, 콘텐츠 제작, 새로운 기술 학습 등)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성공은 비대칭성을 야기하여 우리를 잃을 것이 많은 '노예 상태'로 만들기 쉽지만, 바벨 전략은 우리에게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을 안전판과 동시에 블랙 스완을 기회로 바꿀 자유를 선사한다.
또한,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서 '패배자(Loser)'와 '안티프래질한 실천가'를 구분하게 되었다. 실패 후 방어적인 태도로 자신을 희생자라 여기는 사람은 패배하지만, 실패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시스템 개선의 동력으로 삼는 자는 더욱 믿음직한 존재로 거듭난다. 진보는 기존 시스템에 찌든 노련함이 아니라, 잃을 것이 없는 젊은 용기와 미숙한 아이디어의 프래질함 속에서 싹트는 법이다.
나는 실패를 한 후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그 이유를 찾기보다, 자기 반성을 하지 않고 실패를 활용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당혹스럽고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는 사람을 패배자로 규정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나쁜 상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인다. 실패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믿음이 더 간다. 또 실패(똑같은 실패는 아니다)를 여러 번 겪어본 사람은 실패를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믿음이 간다. (99p)
더불어 안티프래질이란 '무엇을 더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제거할 것인가(비아 네가티바, Via Negativa)'에 집중하는 지혜다.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줄 복잡한 계획과 불필요한 의존성을 걷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스러운 안티프래질리티를 회복할 수 있다.
바람이 불 때 촛불은 꺼지지만, 모닥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안티프래질은 불확실성이라는 바람을 두려워하는 촛불로 살기를 거부한다. 삶의 모든 무작위성과 충격을 나를 더 밝게 태울 땔감으로 삼는 모닥불 같은 삶, 그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도달한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살아남은 것은 시간이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숨은 목적을 충족시켜주기에 훌륭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눈과 논리적 재능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40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