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이게 무슨 맛이야?
여름에 인기 있는 음식으로 냉면은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더운 날엔 냉면을 먹자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나는 그들과 함께 평양냉면집으로 간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면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맛의 평가를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눈치를 보거나,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식초와 겨자를 뿌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반응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입에 안 맞는구나? 싱거워?”
“사실 아무 맛도 안 나서. 이게 무슨 맛이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생각한다.
‘냉면은 쉬운데 평양냉면은 어렵다.’
세상에 무슨 음식이 어렵기까지 하다는 말인가. 그러나 평양냉면의 맛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 끝내 그 맛을 이해하지 못해 ‘먹지 않는 음식’으로 단정 지은 내 가족도 있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쯤, 직장 근처에 점심때마다 긴 줄이 있는 냉면집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줄 서는 시간으로 다 쓰긴 아쉬워 퇴근길에 찾아갔다. 도대체 냉면이 얼마나 맛이 있길래 남녀노소 줄줄이 서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면을 한 젓가락 먹은 후, 고개를 갸우뚱하며 육수를 마셨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맛있게 냉면을 먹고 있었다. 나는 주방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건 물을 육수로 착각하고 잘못 부어왔나?’
식초와 겨자를 넣고 다시 한 젓가락을 먹었다. 역시 맛이 있지는 않다. 다시 식초를 더 많이 넣었고, 냉면 육수는 점점 식초 물로 변하기만 했다. 계속 먹는 일은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손을 들었고, 직원이 테이블 옆으로 왔다.
“여기 냉면 육수가 맹물인데 원래 이런가요?”
직원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조용히 비빔 양념장을 내려놓으며 힘들면 넣어 먹으라고 했다.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으리, 사람들 입맛 되게 특이하네, 이걸 왜 먹지?’ 별별 생각을 하며 면을 건져내서 양념장에 비벼 먹고 나왔다.
신기한 일은 냉면집을 다녀온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난 그 집에 앉아 있었다. 냉면을 주문했고 육수를 마시고 있었다. 딱 한 모금. 그날 마셨던 냉면의 육수 맛이 계속 입안에서 맴돌았다. '분명 맛없었는데 왜 자꾸 생각나지?'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맹물 같다고 생각했던 그 맛이 자꾸 떠올랐다.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물을 마실 때도 그 담백한 육수의 여운이 혀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밋밋했던 맛이 묘하게 그리워졌다. 결국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다시 간 것이다.
냉면이 나오자마자 육수를 마셨다. 처음 맛보았던 딱 한 모금의 육수 맛이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입안에서 퍼지는 고기 육수의 진함과 혀 아래로 감도는 파의 산뜻한 향. 조용히 스며들던 고기 향이 메밀의 고소함과 어우러졌다. 그 조화로움에 모든 감각이 일순간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딱, 그 한 모금에 머릿속이 밝아졌고,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난 평양냉면의 포로가 되었다.
어떤 곳은 고운 붉은 고춧가루와 송송 썬 파를 면 위에 뿌려준다. 같은 재료라도 절여 주는 곳과 채 썰어 주는 곳이 있다. 배는 큼직하게 한쪽 얹어 주기도 하고 얇게 저며 주기도 한다. 육수 맛도 모두 다르다. 고기 향이 진한 곳, 동치미 국물을 쓰는 곳, 둘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곳까지. 평양냉면은 그냥 물냉면이 아니다.
내가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육수의 맛과 메밀의 쌉싸름한 맛의 조화 때문이다. 육수를 마시고 메밀면을 씹으면 두 가지 향이 입안에서 퍼진다. 평양냉면은 입으로 먹으며, 머리로 생각하게 되는 신기한 음식이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먹는 이유는 집마다 모양도 맛도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작은 차이도 냉면을 먹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내게 평양냉면은 전날 과음으로 망가진 위와 마음을 한 번에 치유해 주는 자극 없는 위로다. 잠시 후 눈앞으로 터지는 불꽃은 퀭한 마음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평양냉면은 처음엔 알 수 없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음식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데에도, 매력을 알아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나 첫 만남이 어색해서 주변만 기웃거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인연이 더 길게 이어진다. 평양냉면은 한 입 맛볼 때는 밍밍했지만 먹을수록 그 맛을 알게 된다. 잔잔함과 담백함이 그리워진다. 사람도 음식도 오래 두고 보아야 아름다운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함께 평양냉면을 먹으러 다니는 오랜 친구가 있다. 조만간 만나 우리가 안 가본 가게를 찾아 나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