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나무 도마가 도착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세 딸에게 좋은 도마를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처음 도마를 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뜬금없다는 생각에 무심하게 지나쳤다. 더군다나 요즘은 칼자국 안 나는 도마부터 플레이팅 하기 좋은 도마들이 많지 않은가. 색은 또 얼마나 다양하고 크기는 또 얼마나 다양한가. 일회용 도마도 있는데. 고를라치면 구경만 해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다양한 도마들이 있다. 굳이 무거운 박달나무 도마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아빠 기일에 온 가족이 엄마 집에 모였다. 음식을 준비하던 엄마는 우리에게 또 도마 이야기를 하셨다. 알아보니 16만 원 정도 한다며 왜 아무도 답이 없냐는 것이다. 아무도 도마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이 금액까지 알아보셨다.
“도마 가볍고 좋은 거 많은데, 너무 무거워요. 손목 나가. 안 그래도 요즘 손목 아파서 가벼운 걸로 바꾸는데.”
내 말에 엄마는 조용했다.
“난 도마 있어. 필요 없어요.”
“난 그럼 다른 걸로 사줘요.”
동생들이 한 마디씩 도마에는 관심 없다고 거들었다.
“할머니가 처음 도마 사 왔을 때 무거워서 싫었는데 쓰다 보니 이게 제일 좋아. 아무리 요즘 도마를 사도 이 도마가 최고야. 너희는 음식 만드는 것도 좋아하니까 오래 쓸 수 있는 도마를 사주고 싶어.”
엄마는 40년을 쓰고 있는 도마가 마음에 들었고, 그런 도마를 사주고 싶으신 거다.
도마에 반응이 없는 우리에게 그럼 염소라도 한 첩씩 먹겠냐고 했다. 우리는 모두 기겁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를 바라보았을 때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하고 계시는 모습에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몇 해 전 액세서리를 하나씩 해주고 싶다고 하셨을 때는 모두 찬성했다. 귀금속은 거절할 이유가 없고 엄마까지 넷이 함께 각자의 탄생석을 넣은 목걸이를 하나씩 가졌다. 자꾸 뭘 해주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도마가 그렇게 비싸요.” 툴툴거리며 박달나무 도마를 검색 했다.
요즘 나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 사소한 주방용품 하나 사는 일에도 뜸을 들인다. 이참에 ‘그래, 도마 하나 좋은 거 가져보자.’하는 마음을 가졌고 오늘 집에 도착한 것이다.
물건을 받고 보니 예쁘고 마음에 든다. 도마 전문가가 만든 수제 도마로 통나무로 만들어졌다. 박달나무는 밀도가 높고 단단함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겁다. 무게까지는 감당하겠는데 더 큰 문제는 관리가 필요하다. 작은 메모지에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올리브유를 발라주고 그늘에 잘 말려야 윤기 있게 오래 쓸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내가 과연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진을 찍었다.
“도마가 왔어요, 이뻐요. 미니 도마도 사은품으로 같이 왔어요.”
“관리하는 법도 있어?”
“네, 있어요. 오래오래 잘 쓰겠습니다.”
가벼운 톡 대화를 끝내고 엄마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도마예요?”
“염소 싫다니까, 오래 쓰라고. 플라스틱이 안 좋다 하니까.”
엄마는 염소 이전에도 도마를 이야기했었다. 금액까지 알아보셨으면서. 나는 처음 도마를 생각한 엄마의 마음이 궁금했는데 염소 싫다고 해서라고 하신다. 오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물어봐야지.
엄마 말처럼 오래 쓸 수 있는 도마라면 아마도 내 마지막 도마일 것이고, 두고두고 엄마를 기억하게 될 도마다. 쓸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게 될 도마가 생겼다. 관리를 잘했을 때 이야기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