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보호가 만든 결핍 1부

1부 '지지'라는 장벽

by 마침내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치맛자락을 꼭 움켜쥔 작은 손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사진 속의 장면은 내 모든 결핍의 증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사랑을 넘어선 과잉보호가 나를 결핍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한 사랑은 결핍을 만들고, 결핍은 집착으로, 집착은 다시 결핍으로 악순환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나는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할머니의 품은 내게 안전함의 상징이었다. 할머니는 어느 곳이든 나를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했고, 나 역시 할머니가 있는 반경 안에서 사라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부터 느꼈다. 깔끔한 성격이셨던 할머니는 항상 정갈했고, 조금이라도 더러워지거나 지저분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유일한 보물이었다. 언제나 ‘우리 공주, 우리 보배’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보물을 지키는 방식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셨다. 할머니의 사랑은 따뜻했지만, 동시에 좁은 세계에 나를 가두는 새장이기도 했다.

"지지야."


할머니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오던 말이었다. '지지'는 더럽다는 말로, 할머니의 세계에서 바깥은 모두 '지지'였다.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 그 모든 것은 '지지'라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지지'에 막힌 아이의 호기심은 방 안에서 혼자 노는 것으로 채워졌다.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붙어 있는 것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놀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옷자락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생겼고, 그 끈은 내 모든 애착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 끈은 나중에 내 모든 관계의 방식을 결정짓는 뿌리가 되었다. 안전함과 소속감을 위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방식, 그것이 내가 배운 유일한 관계의 형태였다.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신 날, 용기를 내어 동네로 나갔지만 아이들은 나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다. "쟤는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쟤랑 놀기 싫어." 실제로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따돌려지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함께 어울려야 하는 사회성을 배워야 하는 경험의 시간은 멀어졌다. 결국 할머니만이 친구였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보호하기 위한 할머니의 '지지'는 결국 나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상은 점점 더 낯설고 두려운 곳이 되어갔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나를 부모님 집으로 데려다 놓았다. 분명히 이틀밤만 자고 온다고 했지만 오지 않으셨다. 나는 이유를 모른 채 갑작스레 부모님 집으로 옮겨졌다. 버려졌다는 감정만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어린 나로서는 이유를 알았어도 버려짐의 감정이 해소되진 않았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 동생들이 있는 집이었으나 무서웠고 불안했다. 하루아침에 나의 전부였던 할머니의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이 갑작스러운 분리가 내 최초의 믿음에 대한 배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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